내년도 균형예산에 집착하던 정부가 적자재정 편성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적극 선회하고 있다. 이는 가계부채 누적에 따른 카드 부실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장기화로 기업의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 단계로 들어섰다며 내년에 5%대 성장을 자신하던 입장에서 갑자기 후퇴한 것이어서 총선을 의식한 '선심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5%대 성장 위해 적자재정 불가피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일 국회 예결위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0% 규모의 적자재정 편성을 권고했다"며 "이는 6조원 가량의 적자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전날 당·정 협의회에서도 "내년에 5% 성장을 이루려면 3조원 정도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사실상의 긴축재정으로 끌고 가면 5% 성장은 어려우며 국채를 발행하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최근 우리 정부와 연례협의를 끝낸 IMF의 정책 권고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IMF는 보고서를 통해 "아직은 극히 초기 단계인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긴축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면서 "내년 물가가 2.5%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경기 부양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여전히 부진한데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어 경기회복의 강도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라크 파병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따른 농가 피해 보상 등 새로운 예산 수요도 감안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균형재정 입장을 고수해온 기획예산처도 재경부에 동의하고 있다. 박봉흠 장관은 최근 "내년 예산안은 균형예산으로 편성했으나 5%대의 실질 성장이 도저히 달성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재정규모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처 관계자는 "경제부처 내부에서 적자재정 편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반대로 국회 통과 미지수
하지만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예산증액이나 적자재정 편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예산안의 본격심의를 앞두고 격론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이라크 파병 등 추가적인 재정요인이 발생했기 때문에 적자재정을 편성해서라도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3조∼5조원의 예산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과도한 복지예산 등을 삭감하고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조정, 경제회복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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