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 중 선비 취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원 김홍도(1745∼1806)의 그림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와 거기 등장하는 악기들이 특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림 속 주인공이 연주하고 있는 것은 당비파, 그의 발 아래 장검 옆에 놓인 것은 생황이다. 왜 하필 당비파와 생황일까.음악을 아는 것은 조선 선비들의 기본 교양에 속했다. 선비들이 가장 아낀 것은 거문고였다. 당비파는 거문고만큼 보편적이진 않았지만 거문고, 가야금과 더불어 그들이 즐기던 3금의 하나였다. 선비나 문인들이 음악을 배울 땐 당비파로 시작했고, 관기들은 필수 악기로 배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통일신라 때부터 18세기 중반까지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전승이 끊어졌다.
생황은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도 나올 만큼 오래된 악기다. 우리나라 불화나 범종 부조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신선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특히 단원이 살던 영, 정조 시대 생황은 중국에서 수입하던 대표적 사치품의 하나로, 부와 문화생활의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서도 기생이 생황을 들거나 불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단원은 조선 최고의 화가였을뿐 아니라, 거문고와 대금 연주에 능하고 앉은 자리에서 척척 운을 맞춰 한시를 지을 만큼 음악과 시문에도 뛰어났던 인물로 전해진다. 중인 신분이었지만 사대부에 필적하는 교양을 갖춘 문화인, 즉 선비였다. '포의풍류도'는 당대의 풍류객 단원이 꿈꾸던 바, 곧 음악을 즐기고 시를 읊으며 신선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이다. 당비파와 생황은 그의 음악취향이 매우 고급스럽고 시대의 첨단을 걸었음을 암시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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