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에 참가해 달라는 주문을 받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임 감독 영화의 팬이기도 하거니와 진정 한국영화다운 영화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요."록의 대부 신중현(63)씨가 20년 만에 영화음악에 복귀한다. 1969년 남진 주연의 '푸른 사과'(감독 김응천)를 시작으로, '태양 닮은 소녀'(1974) '오늘밤은 참으세요'(1981) '연인들'(1983)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75년 개봉한 '미인'에는 주연 배우로 출연하기까지 했던 신씨는 "개인적 사정으로 그 동안 영화음악과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사정'이란 74년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이 금지되고, 87년에야 노래 100곡이 해금된 일을 말한다.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은 5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한 명동 건달의 얘기. 18일 부천판타스틱스튜디오의 '하류인생' 촬영장에서 만난 신씨는 "미 8군에서 연주를 하던 60년대 명동의 당구장과 '쎄시봉' '은하수' 같은 음악 다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명동은 고향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명동은 대한민국 멋쟁이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는 신씨는 "명동 깡패들 역시 내 기타 연주는 물론 '님아' '봄비' 같은 노래를 좋아해서 명동의 '시공간' 극장에서 공연이 있으면 극장을 가득 메우고 환호를 보내 주었다"고 회상했다. 신씨는 당시의 한국 가요는 물론 새 연주곡까지 다양한 음악을 영화에 집어넣을 계획이다.
임 감독은 " '하류 인생'의 영화음악은 신중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간 '서편제' '춘향뎐'에서 우리 소리를 널리 알렸다고 자부한다"며 "이번에는 현대 음악인데, 지금도 음악적 생명력이 왕성한 신 선생이 답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30여 년 전 함께 영화와 음악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임 감독은 "허투로마투로(대강) 다니던 시절이어서 어디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아 구체적 곡 만들기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신씨는 한 동안 공연도 미루고, 영화음악에만 매진할 생각이다. "한국 영화 음악이 진화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60·70년대의 멋을 첨단 음향 시스템으로 표현해 보고도 싶고요."
/부천=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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