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도 남편도 없이 홀홀 단신으로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칠십 노파. 그러나 그의 삶이 외롭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군것질 거리를 틈틈이 갖다 주는 구멍가게 주인, 아파 쓰려졌을 때 자기 일처럼 달려와 병원에 입원시켜 주는 택시기사 등 가난하지만 인정 많은 이웃들이 있다. 게다가 자신이 죽으면 쓸 장례 비용 100만원이 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이 없다. 14일부터 대학로 문예진흥원예술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웃어라 무덤아'(고연옥 작·김광보 연출)는 가난하지만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연극을 좀더 보노라면 사정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알게 된다.주인공인 강옥자 할머니를 둘러싼 이웃들은 알고 보면 하나같이 문제 투성이의 인간들이다. 강 할머니가 딸 같이 여기는 구멍가게 주인 정말자는 영생을 믿는 사이비 종교 신자로 돈 100만원만 헌금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부인도 없이 혼자 사는 걸 딱하게 여겨 아들처럼 손수 밥상을 차려줬던 택시기사 한기물은 전과자다. 오빠처럼 여기며 늘 김치를 담가 준 탁기봉 노인은 포주로 돈 100만원에 여자를 사서 망해가는 자신의 여인숙을 되살릴 궁리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더도 덜도 말고 100만원만 있으면 자신들 코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강옥자 할머니가 문제의 돈 100만원을 갖고 있다. 바로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선량한 이웃 사촌이던 정말자, 한기물, 탁기봉은 강 할머니의 100만원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고 때마침 강 할머니의 사연 많은 과거를 알고 있는 먼 친척 조카 최노자가 찾아온다. 최노자에게서 강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 내력을 들은 정말자, 한기물, 탁기봉은 일부러 강 할머니를 찾아가 과거의 기억을 캐묻는다. 강옥자 할머니는 결국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간접 살인을 저지른 3인조는 돈 100만원을 나눠 갖는다.
극단 청우의 14번째 작품인 '웃어라 무덤아'는 돈과 인간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꾸는 인간들의 어두운 욕망을 한편의 블랙 코미디로 그려낸다. 정말자, 한기물, 탁기봉은 세상에서 강옥자 할머니를 동정하고 걱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돈 100만원에 눈이 멀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이들 3인조가 보여주는 행동과 말은 한결같이 우매하고 비열하며 또 이중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우둔함과 탐욕을 마음 놓고 비난할 수는 없다. 3인조의 모습이 너무나 우리 자신의 이율배반적 삶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며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고민에 빠져드는 이유다.
'웃어라 무덤아'의 연출은 '인류최초의 키스', '프루프'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 연극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정 팬을 확보한 김광보씨가 맡았다. 그로테스크하고 암울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그의 손을 거쳐 한 편의 슬픈 희극으로 태어났다. 연출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공연이 시작되기 불과 3일 전에 바꾸었다는 무대는 작품 설정과 잘 어울린다. 지극히 사실적인 내용과 달리 무대 공간은 상징적으로 표현됐다. 구멍가게 여주인 정말자 역을 맡은 배우 노주현을 비롯해 극단 청우 소속 배우들의 연기력은 극의 리얼리티를 한층 더해 준다. 공연은 30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2) 765―7890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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