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텁게 덧칠해진 유채의 밑그림이 마치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 같다. 한 시간 위에 다른 시간이 퇴적되고, 어떤 기억의 자리에 새로운 기억이 스며든다. 화가 이상효씨는 캔버스에 그렇게 물감으로 시간의 층을 쌓고 다시 그 지층을 조각도로 파낸다. 그가 새긴 형상은 옛 신라 범종에 보이는 비천상이기도 하고, 깨진 기왓장에서 보이는 인동당초문이기도 하며, 밤하늘에 보이는 별자리이기도 하다.이씨가 10회 개인전 '어느 연금술사의 꿈'을 18일부터 박영덕화랑에서 열고 있다. 그는 10월 국내 처음으로 서양화 실기 과정을 통해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대 회화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작가다. 논문은 '동양 회화에 있어서의 여백과 서양 회화와의 관계성에 관한 비교 연구'. 논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유화라는 서구적 미술 기법과 동양 회화의 정신인 여백을 하나의 작업으로 통합해 표현하려 한다.
2m 가까운 크기의 두터운 벽화 같은 화폭들은 땅 밑 혹은 해저에 파묻혀 있다가 인양된 고대의 유물을 연상시킨다. 캔버스나 패널에 유채나 테라코타를 입히고 그것을 도로 파내어 문양을 새기는 신체성 두드러지는 작업 과정은 전시 제목처럼 시간의 연금술에 비유할 만하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95년 평소 동경하던 지중해 문화권을 체험하기 위해 그리스와 스페인을 답사한 후 스페인에서 학위 과정을 시작하면서 그는 우리 전통문화에 오히려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유학 기간 내내 내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던 시간의 생성과 소멸, 한국과 서구 문화의 융합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부조 같은 회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27일까지. (02)544―8481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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