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발 구르는 소리는 내지 마세요. 마이크로 다 들립니다."16일 오후 '가족오락관(KBS1 토 오후6시)' 녹화가 진행된 KBS 별관 스튜디오. 일명 '바람잡이'로 불리는 사전 MC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에 앉은 주부들은 흥이 잦아들 줄 몰랐다. 이날 녹화를 위해 새벽 일찍 관광버스를 대절해 상경한 이들은 대구 달성군 현풍면 신협 산악회 어머니 회원 40명과 충남 연기군 금남면 부녀회 회원 42명. 즉석에서 노래와 춤 대결까지 벌인 1시간의 리허설과 2시간의 녹화 내내 박수와 환호를 쏟아내며 스튜디오를 열기에 들뜨게 했다. "스트레스 풀러 왔지유∼." 금남면 부녀회장 박종분(49)씨는 푸근한 사투리를 써가며 자신이 '가족오락관'의 열성팬이라고 소개했다. 같은 동네의 조옥자(50)씨는 "오늘이 시할아버지 제사인데도 왔다"며 "후회 없이 정말 재미있게 놀다 간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1984년 첫 전파를 탔으니 벌써 20년 째. 비슷한 형식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는 연예계 풍토 속에서 '가족오락관'이 이처럼 장수 하며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돌 스타도, 당대 최고 배우도 없는 '가족오락관'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열성 아줌마 부대
'가족오락관'은 온 가족이 부담 없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주말 저녁 시간대를 점령한 젊은 연예인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에 눈살을 찌푸리는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현재 시청률은 평균 11%로, 같은 시간대 주말 오락프로그램이 10∼12%대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좋은 성적이다. 얼마 전에는 MBC, SBS의 신설 주말 오락 프로그램 '누구누구' '실제상황 토요일'의 시청률을 누르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 시청자층은 역시 40·50대 중장년층, 그것도 아줌마들이다. 현재 참가 신청자가 너무 많아 6개월 씩 출연이 밀려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오경석 작가는 "심지어 녹화하러 오는 관광버스에서도 춤판이 벌어질 정도로 '가족오락관'은 주부들의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 무대로 자리 잡았다"고 귀띔한다. 출연자 역시 마찬가지여서 탤런트 여운계, 사미자씨는 "2,3개월에 한 번은 '가족오락관'에서 놀다 가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할 정도이다. 출연자나 방청객 모두 한바탕 즐겁게 놀다 가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어찌나 분위기가 흥겨웠던지 방청석에 앉아 있던 주부가 너무 열심히 응원하다가 뒤로 넘어져 NG가 난 적도 있다. 제작진은 지나치게 '야유회' 분위기가 나는 게 약간은 부담스러운 눈치지만, 방청 나온 주부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컬트적'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단순하지만 몰입할 수 있는 코너들
몇몇 코너는 시대와 시청자 구미에 맞게 바뀌었지만, 단순하면서도 금세 몰입할 수 있는 퀴즈 대결로 웃음을 전해주는 기본 포맷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주부 방청객이 남성팀, 여성팀으로 나눠 게임에 동참하는 형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내에 출제자가 설명하는 단어를 맞히는 '스피드 퀴즈', 넷이서 한꺼번에 한 자씩 부르면 상대편이 이를 조합해 맞추는 '사구동성 퀴즈', 귀를 막은 채 소리를 질러 단어를 전달하는 '고요 속의 외침' 등의 코너는 브라운관 밖으로 나와 보편적인 게임이 된 경우다. 남현주 PD는 "단순한 것이 오히려 더욱 강력할 수 있다"며 "특히 '고요 속의 외침'은 편안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의외의 상황이 많이 연출돼 가장 인기가 있는 코너"라고 말한다. 또 단순하면서도 쉽게 오답을 유도할 수 있는 문제도 온 가족이 즐기기에 좋다고 제작진은 설명한다. 이날 녹화에서도 '고요 속의 외침' 코너에서 '애들은 가라'라는 문제가 출제됐는데 '행주 빨아'→'계속 가라→'큰 젓가락'→'가서 해라' 등 엉뚱한 답이 이어지면서 폭소를 자아냈다.
진행자의 힘
'가족오락관'은 '허참 오락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87년 교통사고로 단 한 번 자리를 비운 것을 빼곤 꼬박 20년 째 '가족오락관'의 마이크를 잡고 있다. 제작진은 "허참씨가 그만두면 '가족오락관'도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가 이처럼 한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애드립과 매끄러운 진행 능력 때문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웃음을 유도하는 것도, 아줌마 방청객과 출연진을 잇는 것도 그의 몫이다. 녹화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출연진과 간단히 입만 맞추고도 대본 없이 무대에 설 만큼 그는 노련하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TV 보는 풍경을 보기 힘든 요즘 '가족오락관'은 그런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자리를 지켜 왔다. 적어도 '가족오락관' 만큼은 시청률에 영합해 젊은 연예인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고집도 한 몫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가족오락관' 초창기부터 구성작가 일을 해온 오 작가는 "오래된 프로그램이나 진행자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내년 6월 1,000회를 앞두고 있는 '가족오락관'이 남녀노소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계속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참씨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1,000회, 그 이상까지 계속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사진 김주성기자
● "가족오락관" 그것이 알고 싶다
여자 MC는 몇명이나 거쳐갔을까.
허참씨는 '가족오락관'의 터줏대감이라는 별명답게 숱한 여성 MC와 입을 맞췄다. 오유경 정소녀 손미나 김자영 전혜진 오현정 변우영 윤지영 박주아 등 총 16명. 이중 손미나는 5년 가까이 진행해 최장수 여성 MC로 기록됐다. 남현주 PD는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하는 여자 아나운서라면 '가족오락관'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자리잡았다"고 귀띔한다.
'가족오락관'을 거쳐야 뜬다?
탤런트로는 장서희가 '인어아가씨'로 톱스타 대열에 들기 전 6개월 간 MC를 맡았고, 전혜진도 MC를 맡은 뒤부터 '뜨기' 시작했다.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영화배우 방은희는 패널로 나와 화끈한 끼를 보여준 것을 계기로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 신인들 사이에서도 패널 출연자로서의 능력을 검증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험대로 자리잡았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가족오락관'은 여성팀에게 유리하다?
여성팀이 더 자주 이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연출된 상황은 아니다"고 제작진은 강조한다. 이런 차이는 남자 연예인들은 재미있게 코너를 이끌어 가는 데 조금 더 신경을 쓰는 반면, 여자 연예인들은 답을 맞히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것. 오경석 작가는 "MC인 허참씨가 남자이기 때문에 좀 더 배려해주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가족오락관'은 퀴즈 프로그램의 대부?
우선 대결 방식의 퀴즈 형식을 처음 도입했다. 간판 코너인 '스피드 퀴즈' '사구동성' '고요 속의 외침' 등도 '가족오락관'이 새롭게 시도한 코너다. 요즘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뿅망치 대결'도 '가족오락관'에서 처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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