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생활 대사 좀 치지 마세요."(방송가에서는 대사를 말하는 것을 '친다'라고 표현한다)생활 대사? 생활 대사란 대본에 쓰여 있는 짜여진 문장이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편하게 주고받는 말이다. 쉽게 말해 즉흥 연기, 애드립이다.
드라마에서 생활 대사를 들으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마치 생활의 한 부분을 뚝 떼어다 브라운관에 심어놓은 듯한 생동감을 느낀다. 그러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연기자나 제작진은 생활 대사 때문에 애를 먹기 일쑤다.
방송가에서 손꼽히는 생활 대사의 달인은 임현식. 맛깔스러운 조연으로 드라마를 빛내는 그는 방송 3사의 드라마에 골고루 출연하다 보니 사실 대본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모두 외우기 힘든 만큼 제대로 못 외운 부분을 생활 대사, 즉 애드립으로 넘어간다. 그는 애드립을 드라마의 맛을 내는 양념에 비유한다.
그런데 간혹 양념이 안 맞아 문제가 발생한다. 혼잣말 같은 단독 대사일 경우 상관없지만 대사를 주고 받아야 할 상대가 있는 경우 사고가 터진다. 노련하거나 애드립에 자신이 있는 배우는 임현식의 생활 대사를 곧잘 받아 넘기지만 그렇지 못한 배우, 특히 신인의 경우에는 대본에 없는 대사가 튀어나오면 바로 얼어 버린다. 그러면 영락없이 NG(no good)가 난다.
오죽했으면 임현식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경우 작가들이 그의 대본에 "선생님, 생활 대사 좀 치지 마세요" 또는 "대본대로 해주세요"라는 주문을 적어 놓을까. 그때마다 임현식은 "알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그의 입에서는 또 생활 대사가 튀어 나온다. 그래서 그가 출연하는 장면은 똑 같은 상황도 매번 찍을 때마다 대사가 달라진다.
그런데 생활 대사의 고수라는 임현식을 깜짝 놀라게 만든 적수가 있다. 바로 류승범이다. 그는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임현식과 장인·사위 사이로 호흡을 맞췄다. 그때 신인이었던 그는 임현식의 현란한 생활 대사를 술술 받아넘겨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하도 잘 맞아 제작진들은 생활 대사가 누구 차례에서 막힐지 내기를 한 적도 있다는 후문이다.
여자 연기자 가운데에는 중견 탤런트 박정수의 생활 대사가 유명하다. 원래 성격과 극중 성격이 비슷한 배역을 맡으면 그의 생활 대사는 아줌마의 자연스런 수다처럼 빛을 발한다.
하지만 능수능란한 생활 대사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출연하기 힘든 드라마가 있다. 바로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다. 그는 대본에 적힌 토씨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기 때문에 극중 애드립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드라마에 출연해서 생활 대사를 되풀이하는 배우는 다시 그와 일하기 힘들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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