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12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본격화하고, 단속에 걸린 외국인은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주 강제출국을 염려한 외국인 노동자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는 내년 8월부터 시행될 외국인 고용 허가제의 정착을 위하여 불법체류자를 강제출국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3D업종의 산업현장에 꼭 필요한 기능공이라는 현실적 측면을 떠나, 우리에게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현재 우리에겐 한미관계를 포함하여 주변 4강과의 이해관계가 중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동아시아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미 정치, 경제적으로 아세안 국가들과 긴밀해지고 있으며, 정례화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하여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미국과 유럽의 문화에는 익숙해지면서도 정작 이웃의 모습에는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껴안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지향이라는 국가전략은 머지 않아 난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과 결혼한 아시아 노동자 1만 5,000명이 저임, 산재, 폭력 등으로 인권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아시아인에 대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지 않는 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어느 귀화 한국인의 지적처럼, 아시아는 시장, 인력 등의 경제적 잠재력과 함께 한국 사회에 부족한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제공해준다.
한국이 진정으로 '아시아의 자랑'(Pride of Asia)이 되려면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과 대접부터 달라져야 한다. 멀리 로마제국의 세계경영전략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오늘날 미국과 독일의 부와 경쟁력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민국가이기에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 전 서독은 인구의 약 10%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하여 경제발전을 지속하였다. 우리가 아무리 단일민족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길지라도(실은 세계 어느 나라도 순수 단일민족국가는 없다),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인구의 1%도 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폐쇄성은 사회 발전의 동력과 활력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외국으로 진출하듯이, 외국인의 한국진출도 훨씬 자유롭고 다양해져야 할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동양이 서양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서양이 동양을 더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그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이제 아시아가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한국이 아시아를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불법이든 합법이든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는 없다. 그들이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국가와 법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고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라도 잃지 않아야 한다. 바로 거기에 인간사회의 감동과 존엄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 주 한국 땅에서 두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비참하게 죽어가면서 정말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필자의 가슴이 짓눌려온다. 우리가 우리 사회의 비인간성과 폐쇄성에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세계 속의 한국을 부르짖는다는 것은 자기기만의 차원을 넘어 인간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송 병 록 경희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