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은 정말로 배가 고팠다. 어제 저녁부터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나 진부해서, 다시 한 번 더 얼굴을 찡그리고 하품을 했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식당으로 가야 한다. 물론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 그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식당으로 갈 필요조차 없다. 이런 종류의 무기력함은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을 수 있었던 시절들을 회상했다. 우유를 한 양푼이나 벌컥대며 마시고 고기 국물을 바닥에 흘리고 삶은 감자와 토마토와 스파게티 국수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잔뜩 있었다. 그때 노용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주방 직원이었다. 그는 검은 쓰레기 봉지에 음식물을 담아 쓰레기를 버리는 척하며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가 이유 없이 해고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잔뜩 먹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목구멍 안쪽까지 감자와 국수와 다진 고기가 꽉 찰 때까지 말이다. 약간의 요령만 있으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싫증난 고기 찌꺼기와 다진 양파와 토마토 그리고 삶은 계란과 햄 등을 신선하지 못하다는 이유를 달아 쓰레기통으로 몰아넣었다. 뭘 몰랐던 시절이었다. 비행기에서는 기내 서비스를 하는 승무원들이 운반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깡통에 든 남은 오렌지 주스와 우유를 그런 식으로 마구 버린다. 그가 지금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친구를 가지고 있다면 날짜가 지나버린 샐러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찬가지로 오래된 포장된 훈제 생선이나 빵을 몇 덩어리라도 얻을 수 있다. 요즘은 아무도 그런 것들을 먹으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노용은 대형 레스토랑에 가서 버릴 음식물이나 재료를 나누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종업원들은 다람쥐처럼 움직이며 명랑한 척 굴었다. 노용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동반자가 없는 남자 손님에게 적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흡연석을 원하시나요, 손님?" 그들은 노용에게 물었다.
"흡연석이 아니라, 난 이곳 주방에서 버릴 음식물들을 얻으러 왔는데요." 노용이 말하자 그들이 깜짝 놀랐다. 노용이 그다지 목소리를 줄이며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도 그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하셨나요?" 종업원은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음식물 말입니다. 먹을 것들. 기간이 지난 햄이나 굳어진 빵이나 지나치게 삶아진 국수 같은 거요.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 거라면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지배인에게 물어보아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지배인에게 안내해주실 수 있습니까?" 노용이 이렇게 묻자 종업원은 화난 표정이 되었다.
"지금 여기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저희는 너무 바빠요. 지배인은 저기 서 있는 사람이니 직접 가서 물어보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지배인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였다. 그는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그는 노용에게 미소를 지었다.
"손님, 무슨 불만이 있으십니까?"
"음식물을 얻고 싶어서요. 이곳에서 쓰지 않고 버리는 음식물을 말이죠."
"저희는 음식물을 버리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요리해서 팔 뿐이죠. 저희가 만일 뭔가 버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음식물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불리는 것들이죠, 손님."
"내 말은, 그러니까 한때는 음식물이었으나 신선도가 떨어지고 기간이 지난 햄이라든가 빵이나 치즈나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라면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주방은 관리자가 따로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자세히 알 수 없군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은 주방이 너무 바빠서요."
"그렇다면 언제쯤 다시 오면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배인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10시가 넘으면, 좀 조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노용은 집으로 돌아와 배고픔을 참고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그 레스토랑으로 갔다.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주방의 책임자라는 사람은 노용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왜죠?"
"우리는 남은 음식물을 구호단체에 보냅니다. 당연한 일이죠." 주방의 책임자는 뻔한 얘기를 묻는다는 식으로 노용에게 면박을 주는 시선을 던졌다.
"무엇을 위한 구호단체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고아와 자선병원, 실업자 구호단체 정도가 아닐까요. 그것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단지 증명서를 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무슨 증명서죠?"
"구청에 내는 잔여 음식물 비사용 증명과 기부금 증명서죠. 세금 관련 서류 말입니다."
"저어 나도 마찬가지로 그 구호 대상에 포함되는 사람인데요. 그리고 난 지금 아주 배가 고파요.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직접적인 구호단체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직접 그 단체로 찾아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아시겠어요?"
그들은 남은 음식물을 쓰레기 봉지에 집어넣으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그들은 노용의 배고픔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군. 노용은 수긍했다. 그런 음식을 자유롭게 얻을 수 있다면,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단지 먹을 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말이다. 노동을 유발하는 요인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일 터이다. 그러나 이런 전체적인 시각은 행정가나, 정책가 들의 일일 것이다. 보통의 개개인들에게 그런 생각까지는 필요 없는 걱정일 터인데 왜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고기 국물을 하수도에 흘려버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먹을 것을 위해서 이마에 땀이 번질거리도록 일하고 또 일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먹을 것을 단지 배가 부르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고 있다. 그 두 가지 세계가 원활히 연결된다면 좋을 텐데. 이건 마치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본다면, 상당한 부분, 버리기 위해서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노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운이 좋으면 먹을 것을 얻는 날도 있었다. 준희의 단골 빵집에서는 가끔 노용에게 팔다 남은 크림빵을 주었다. 그리고 날짜가 지난 우유는 슈퍼마켓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준희의 말대로라면 노용은 너무 게으르기 때문에 뭔가를 얻어먹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날씨가 좋을 때 대학 식당으로 나가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반드시 밥을 남기는 여학생이나 속이 좋지 않은 지방 출신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군말 없이 남은 밥을 주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야만적이다. 그것은 노동을 강요한다. 노용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버리고 있는 정도의 음식물만 있으면, 그는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은 버리려고만 하지 그에게 주려고 하지 않는지, 그것은 상당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벨을 누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에 혹시 남거나 버리려고 하는 음식이 있다면 좀 나누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 그럴 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람들은 그를 해로운 정신병자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냉장고에서 남은 국수다발이나 상한 홍당무나 버리려고 내다 놓은 곰팡이 핀 빵과 같은 음식을 꺼내기가 귀찮은 사람들이다. 노용의 생각으로는 음식을 버리지 않아서 그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일하지 않고 얻어먹으려고 하는 노용을 증오하기도 한다.
왜 그러는 거지? 나는 너희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구.
그러나 어쨌든 배가 고프기 때문에 노용은 밖으로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한다. 그는 일단은 준희의 회사로 가기로 한다. 걸어서 갈 수 있고 그리고 그 쪽으로 슬슬 걸어가는 동안에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는 음식점에서 고기와 야채를 잔뜩 먹은 뒤 돈이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것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만일 정 따뜻한 밥이 먹고 싶다면, 먹기 전에 먼저 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한 그릇의 밥을 예의 바르게 청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노동을 거부했으며(Why not?), 그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게으르고 무용지물인(Why not?) 자신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감수성이 있고 도덕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준희는 자리에 없었다. 준희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곳은 부동산을 사고파는 장소였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이 항상 들락거렸다. 그래서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준희의 사무실을 기웃거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준희는 자리에 없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준희가 오늘 출근하지 않았느냐고, 다른 직원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모두 바쁜 일에 시달리고 있어서, 아무도 그에게 자세히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좀 실망했다. 돈을 꾸어주지 않더라도 이곳까지 와서 준희를 만나지 못하면 슬픈 일이다. 그는 대기실의 의자에 앉았다. 그곳은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그는 크림과 설탕을 듬뿍 탄 커피를 만들어 아침 대신으로 천천히 마셨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대기실은 막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플랫폼처럼 복잡해졌다. 그들은 지도를 펼쳐 놓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는 준희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여직원을 발견했다. 그가 이곳에 올 때마다 준희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본 그 여직원이다. 그는 커피를 마신 다음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준희는 오늘 나오지 않는지, 언제 나오는지, 아주 나오지 않는지 그런 것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누구시죠?"여직원은 노용의 얼굴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많은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난 준희보다 1년 먼저 태어났죠."노용이 이렇게 말했으나 여직원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같은 집에서요."
"그렇다면 준희의 오빠라는 말인가요?"
"남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말도 안 돼요."
"뭐가 말입니까?"
"준희는 아침에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갔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가 말입니까?"
"지금 거짓말이죠? 준희 오빠라는 거?"
"정말인데요."
"죽었다잖아요. 그 애는 정말로 울기까지 한 걸요."
"아, 그렇군요." 노용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다가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며칠 뒤에야 나오겠군요. 그런데 혹시 먹을 것, 아무것이라도 상관없으니 가지고 계시면 좀 나누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의 배는 커피를 탄 설탕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의 입 속에는 커피에 넣는 각설탕이 들어 있었다. 그는 말처럼 우물거렸다. 그의 주머니에는 조금 전의 부동산 회사 여직원에게 받은 초콜릿 캐러멜이 잔뜩 들어 있었다. 햇빛은 기분 좋게 따뜻했다. 가을 햇살답게 부드러우면서 뜨거웠다. 그는 긴 팔을 휘적휘적 흔들며 천천히 걸었다. 그는 간혹 멈추어 섰는데 이 세상 아무도 그를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 자신도 그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에 몹시 흐뭇하고 진정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흥, 죽었다고, 나 말고 누가 죽었다는 거지? 아니면 준희가 일을 쉬고 싶어서 거짓말했을지도 모르겠군.
길가의 음식점에서 고기를 삶는 냄새가 풍겨 나오고 김이 서린 그 상점 안에서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기 국물을 입 안으로 떠넣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처럼 보였다. 그는 길을 건너는 것도 잊은 채 물끄러미 상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렇게 땀을 흘리면서까지 많이 먹을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도 저런 식으로, 미어터지게 고기를 입 안으로 쑤셔넣은 기억이 있다. 끓인 고기 국물을 입가로 철철 흘리며 들이마신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위장의 불쾌감과 포식에의 고통이 뒤따랐다. 그때, 식탁의 모든 사람들이 혐오와 동정의 눈초리로 그의 게걸스러운 식사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그의 친척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초대된 사람은 고기를 거의 먹지 못하고 낯빛이 새파래져 있었다. 준희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상추이파리만 씹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앉아 있었다. 노용은 더 이상 먹지 못할 만큼 많은 음식을 먹은 다음, 당연한 수순으로 구역질을 느꼈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그대로 집으로 달아나버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그들은 그가 일을 하기를 바랐다. 일하지 않으면서 먹기만 바란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노용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단지 버리는 것을 먹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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