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19일 삼성재벌의 창업자 이병철이 77세로 작고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한국 부고 기사 문화의 관례를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그가 창간한 중앙일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간 신문들이 두세 면씩을 그의 죽음에 할애했고, 방송도 거기 뒤지지 않았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의 죽음 이후 그 때까지 한국 언론이 그렇게 파격적인 부고 기사를 내보낸 것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현직 소련 공산당 서기장들이 죽었을 때 말고는 없었던 듯하다. 한국 언론은 이병철의 죽음에 초강대국 현직 최고권력자의 죽음만큼이나 큰 뉴스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이병철은 경남 의령 출신이다. 중동중학과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에서 공부했다. 26세 때인 1936년 마산에 정미소를 세우며 장사를 시작한 그는 두 해 뒤인 1938년 3월 대구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상회는 국수·청과류·건어물 따위를 취급했다. 이 삼성상회가 지금 한국 최대의 기업 집단인 삼성그룹의 출발점이었다. 이병철은 1964년에 설립한 한국비료가 두 해 뒤 사카린 밀수사건에 휘말리면서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것을 제외하곤, 작고할 때까지 삼성 재벌을 이끌었다.
다른 재벌 기업들이 그렇듯 삼성에도 정경유착, 조세포탈, 변칙상속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가 들러붙어 있지만, 그리고 다른 기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반(反)노조 이미지가 들러붙어있지만, 아무튼 삼성이라는 소박한 이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련된 브랜드가 되었다. 이병철의 호는 호암(湖巖)이다.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 중앙일보 사옥 지하의 호암 아트홀과 호암갤러리 같은 문화 공간이 그의 호를 따 명명되었다. 일제 시기의 사학자 겸 언론인 문일평의 호가 호암(湖岩)이었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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