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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학무정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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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학무정 소나무 숲

입력
200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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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에서 속초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상도문동이라는 마을 입구에 학무정(鶴舞亭)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국립공원 설악산의 명성에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이정표를 따라 마을 안의 좁고 울퉁불퉁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자동차로 2∼3분 들어가면 강원도 속초 팔경 중의 하나인 학무정이 있는 소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발원해 오염되지 않고 흐르는 쌍천(雙川)변 울창한 소나무 숲 속의 학무정에 앉으면 이태백이 아니라도 저절로 한 수의 시상이 떠오를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솔거나 운보와 같은 화백이 아니더라도 숲속 정자를 배경으로 낙락장송과 한 마리의 고고한 학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학무정 주변의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에 널리 자생하는 소나무와는 좀 다르다. 강원도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조령으로 통하는 종관산맥(縱貫山脈) 가운데 특히 계곡부위의 토양과 수분조건이 좋은 비옥한 지역에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연륜 폭이 균등하고 좁으며 목리(木理)가 곧은 금강소나무와 중부 내륙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중간 형태로 원줄기는 곧고 껍질은 얇으며 붉은색이고 가지 끝의 어린가지는 아래로 늘어져 둥글고 원만한 수관의 모양을 이룬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즐겨 화폭에 담았던 고풍스런 바로 그런 소나무로만 구성된 것이다.

학무정 주변의 소나무 숲 수령은 200년 내외. 나무 높이 14∼15m, 가슴높이 지름 30∼50㎝로 잔병치레 없이 잘 가꿔지고 보전돼왔다. 그런 만큼 외형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이다.

학무정은 1933년 속초시 도문동에 살던 매곡처사 오윤환(吳潤換·1872∼1946)이 건립한 정자로 정자 모양이 육각(六角)이어서 흔히 '육모정'이라고 부른다. 학무정의 4면에 정자이름을 적은 현판이 있는데 남쪽은 '학무정(鶴舞亭)', 북쪽은 '영모제(永慕齊)', 북동쪽은 '인지당(仁智堂)', 남서쪽은 '경의제(敬義齊)'라 쓰여 있다.

오윤환의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매곡(梅谷)으로 속초 도문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성리학을 깊이 공부하고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으며 마을에서 오로지 후학 교육에만 힘썼다. 3·1독립운동에 제자들과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며 삭발령과 창씨개명을 반대했던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오윤환은 상도문리 쌍천가 푸른 소나무 숲 속에 친척들과 제자들의 협조를 얻어 학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다른 여러 선비들과 함께 시를 읊고 글을 지었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도장으로 삼기도 했다.

학무정이 서 있는 소나무 숲은 상도문리 마을 공동 소유의 땅이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의 더위를 씻어주는 쌍천과 여러 사람이 모여 운동할 수 있는 넓은 터가 있어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쌍천은 지금도 쓰레기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개울로 유지되고 있고, 학무정 소나무 숲은 오윤환 선생의 후손인 오준택씨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이 단합해 잘 가꾸며 보전하고 있다. 숲의 병해충 방제는 산림청 강릉국유림관리소가 담당하고 있다. 국가와 지역주민의 공동노력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아름답고 건강한 숲, 학무정 소나무 숲은 앞으로도 오윤환 선생의 정신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음이 간다.

최 명 섭 임업연구원 박사 hnarbo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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