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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호주제 폐지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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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호주제 폐지에 대한 오해

입력
200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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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호주제 폐지와 관련된 토론회에 참석하고 나면, 마음이 심란하다. 이제는 시민사회의 층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런 토론회에 참석해보면 우리에게 절차적 민주주의는 아직 머나먼 길이 아닌가라는 절망감이 든다. 고함과 욕설이 오가고, 급기야는 토론회가 중단되곤 한다. 어떤 주제이든 간에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고, 사리를 따지는 합리적 토론이 아쉽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사안에 대한 해석과 입장은 상당 부분 오해로 둘러싸여 있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계가 지난 40여년 동안 지난하게 추진해온 과제이고, 유엔(UN) 인권위원회도 수 차례에 걸쳐 그것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호주제는 1915년 일제가 민적법을 개정하면서, 실제 가족생활과 무관한 추상적인 '가(家)'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시작된 제도이다.

호주제는 법률상 호주와 다른 가족 구성원을 구분하여 서열화 하기 때문에 가족 간의 평등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호주제는 남자 위주의 호주 승계가 전제되는 가족 형태가 아닌 재혼가족, 독신모 가족, 한부모 가족 등을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규정하는 이념적, 심리적 장치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미 오래 전부터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1명의 자녀를 가진 가족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딸만 가진 가족은 실제로 호주제 하에서는 '가(家)'가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혼한 여성이 양육권과 친권을 가지고 자녀와 한 집에 살지만, 어머니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재혼한 가정의 경우, 양부의 호적에 올릴 수도 없고, 형제끼리 성이 달라서 주변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기가 일쑤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호주제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정서에는 호주제 폐지로 인해 가족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배여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겪고 있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도 내포되어 있다.

정부가 상정한 민법 개정안은 국무회의의 조정을 거쳐 가족의 범위를 수정하여 포함시켰다. 즉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민법에 의해 가에 입적한 자'에서 '부부, 그와 생계를 같이 하는 혈족 및 그 배우자, 부부와 생계를 같이 하는 형제자매'로 바뀌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쟁점이 된 성씨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기존의 부성강제주의를 '부성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으로 바꾸었고, 단지 부부가 합의한 경우에 한해 모성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민법개정안은 초기에 여성계가 제기한 안을 조정하면서 토론을 통해 합의한 것이어서, 호주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의 급류가 밀어닥치면서, 세계 곳곳에서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 사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잘못된 금융정책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면서, 가족 해체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세계화의 부작용 속에서 생존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은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국제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불평등한, 위계적인 가족구조로서는 이 같은 위기의 시대에 가족이 해야 할 긍정적인 역할을 해낼 수 없다.

한편에서는 넘치는 물질적 풍요가,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을 염려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국민의 삶을 제대로 지켜내기 위해서는 평등한 가족 구성이 강력히 요청된다. 이를 위해서는 호주제의 폐지가 불가피하다. 더불어서 정부와 사회는 대안적인 가족 모델을 만들어 가고,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정 현 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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