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고조돼 왔던 유럽 내 반(反) 유대주의의 파고가 최근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현 반유대주의 물결은 민족 감정에 기초해 유대인 개개인을 타깃으로 했던 기존 정서와 달리 반(反) 이스라엘 색채를 띠고, 유대 민족 전체를 향한 반감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7일 반유대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프랑스 내 유대인에 대한 공격을 프랑스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고조되는 반 유대 테러
터키 이스탄불에서 유대교 회당 2곳이 자살폭탄 공격을 받은 15일 프랑스 거주 유대인 60만 명은 파리 인근 유대 학교가 화염병 공격으로 불타버리자 허탈감에 휩싸였다. 500만 프랑스 이슬람교도의 위협에 직면해온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프랑스 정부에 불만을 가져왔던 터라 프랑스 탈출을 꿈꾸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지난달 기독교민주연합 소속 마르틴 호만 하원의원이 "유대인은 범죄민족"이라고 발언해 반 유대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에서도 이라크 전쟁 및 팔레스타인 문제 보도등과 관련해 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여온 BBC 방송과 가디언지 등을 향한 유대인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반유대주의의 배경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17일 "우리는 유대인 개인이 아닌 유대 민족 전체를 적대시하는 새로운 물결을 목도하고 있다"며 현 반유대주의의 특징을 언급했다. 편견 등 사적 감정에서 촉발됐던 반유대주의가 이제 유대민족 전체를 제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인의 59%가 이라크가 아닌 이스라엘을 세계 최대의 평화 위협국으로 지목했다는 여론조사결과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 하다. 이는 결국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무장봉기)를 낳은 이스라엘의 독불장군식 팔레스타인 정책 등에 대한 유럽인의 비판적인 평가, 즉 반 이스라엘 정서와 맥이 닿아 있다.
이스라엘의 분위기와 대책
이스라엘은 대단히 폐쇄적인 입장에서 대응하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자신의 정책이 반유대주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 등을 외면한 채 반유대주의 현상의 심각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샤론 총리는 "반유대주의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스라엘에 정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테러는 유럽 내 이슬람 교도들의 낮은 경제수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정부는 70억 달러를 영내 이슬람 공동체 경제 재건을 위해 지출키로 결정, 이슬람 교도들의 빈곤 탈출만이 반유대주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의 경우 회교도 청년 실업률이 주류사회의 그것보다 3배 이상 높으며, 다른 유럽 국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아랍국들의 빈곤을 치유하는 길만이 테러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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