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분야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폐인'과 '얼짱'. 연예계 인물 가운데서는 '걸어 다니는 벤처기업' 보아와 10분만 시간을 주면 불가능한 일이 없는 이효리 쯤이 될 것이다. 이들 키워드는 전혀 다른 듯하지만 묘하게 닮았다. 이를 흘겨보면 10·18만 존재하는 대중문화 시장의 관습이 보이고, 긍정적으로 살피자면 전세훈의 만화 '노노보이'가 보인다.개기일식이 일어난 어느날 구두닦이 출신 가수지망생 나동태의 몸이 댄스가수 이지수와 뒤바뀐다. 대중문화 상품의 관습적 기능으로 보자면 '내가 원하는 소원을 이뤄주겠다. 그러나 12시까지는 돌아와라' 뭐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다. 주인공 동태가 자신의 변신을 받아들이고 이 상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원하던 가수가 되어서가 아니라 이지수의 오랜 친구이자 백 댄서이고 룸메이트인 해미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몇 번 우려먹은 소재에 그저 그런 삼각 연예 구도가 그려질 법하다. 몸만 여자인 남자와 진짜 여자의 '단칸방 사랑 이야기'는 소년 독자의 시선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매력 만점의 기획 상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1992년 데뷔작인 '노노보이'는 그렇게 말랑말랑한 작품이 아니다.
보아나 이효리의 등장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지수의 몸을 빌린 동태가 노래와 춤으로 '도쿄 정벌'에 성공하는 모습은 열혈 만화를 보듯 몸을 들썩이게 한다. 지수와 동태의 몸이 원상태로 바뀐 뒤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긴장 수위를 높여가며 계속된다. 작가는 이 작품이 언제 '전신 변신' 같은 터무니없는 소재를 다뤘냐는 듯 아티스트 나동태의 빌보드 챠트 입성기를 진지하게 그려간다. 댄스가수가 아닌 밴드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서, 로맨스만화가 아닌 대중음악 전문소재 만화로서 정면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뜨고 있는 '폐인' 출신 만화가, '얼짱' 출신 연예인에게서 이런 정서를 찾을 수 있다.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만만하게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것이다. 조연 전문에서 '인어아가씨'의 히로인이 되기 위해 드럼과 기체조 등을 배우고 성형수술도 했다는 장서희처럼 이들도 스타를 준비했다. 가장 원했던 것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정면 승부를 한 '파이터'였던 것이다.
전세훈은 '특이소재 만화' 분야의 대표 선수이다. 가요 무협 수영 김치 퀵서비스 손금 등 매 작품마다 색다른 소재를 다뤄왔다. 대중음악 전문소재 만화인 '노노보이'가 이야기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타고난 조건이나 우연한 기회'를 버리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꿈을 이루라는 것이다. '삶의 미련은 단 1%,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의 양'이다. 또 '도대체 그 꿈을 버리면 넌 무엇으로 살래?'
/박석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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