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사진도 그림도 하나도 없네. 엄마, 낙서뿐이잖아요." 11일 오후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 역 '어린이 미술마당'. 며칠을 벼르다 이 날 아들 병현(8)이와 '어린이 미소 사진전'을 보러 온 이은하(광진구 능동)씨는 텅 빈 전시공간에 아연실색했다. 불이 꺼져 어둑한 지하 1층 전시장에는 단 한 점의 작품조차 걸려있지 않았고, 외벽은 온통 낯뜨거운 낙서 칠갑이었기 때문이다. 개관 기념으로 설치했다던 벽걸이 작품은 여기저기 파손된 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 아이를 달래며 발길을 돌리던 이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은 전시회가 꽤 열려 가끔 찾았는데 그 새 이렇게 난장판이 돼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낙서마당된 어린이 미술마당
서울시가 '최초의 어린이 전용 문화공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4억여 원을 들여 지난 해 5월 문을 연 어린이 미술마당이 시의 허술한 운영 계획과 관리 부실로 엉망이 된 채 방치되고 있다. 올 3월이후 열린 전시회는 단 2차례. 나머지 기간은 거들떠보는 이도 없어 욕설이 난무하는 낙서마당으로 전락했다. 전시공간과 함께 마련된 어린이 영상센터와 놀이방, 수유실 집기들 역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 공간이 흉물로 전락한 것은 운영 책임을 맡았던 광진문화원이 적자 누적으로 올 3월부터 손을 떼면서부터. 초기에는 적자를 감수하며 청소와 경비를 위한 별도 인원도 배치해봤지만 빠듯한 문화원 살림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광진문화원 박승호 부장은 "입장료 500원씩 받아서는 인건비 등 월 운영 자금 200만원을 마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관련 기관마다 해법 떠넘기며 방치 당초 시와 도시철도공사 측은 어린이 미술마당을 5호선 광화문 역사 '광화문 갤러리'처럼 운영할 계획이었다. 광화문갤러리의 경우 세종문화회관이 도시철도공사에 매달 800만∼900만원의 대관료를 지불하고, 위탁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세종문화회관으로서야 광화문갤러리 대관료나 전시회 개최 비용도 별 부담이 없지만, 민간 예술인 모임인 광진문화원의 경우 사정이 달랐던 것.
도시철도공사측은 미술마당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시에서 도와주기로 한 만큼 현재로서는 시가 나서거나, 아예 공간을 매점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다. 광진구 역시 미술마당 시설 운영·관리 책임이 궁극적으로 서울시에 있는 만큼 구 예산으로 운영비를 지원할 근거가 없다며 난처해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새 운영 주체를 찾기 전까지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별도의 예산을 배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재선(20·세종대1)씨는 "몇 억원씩 들여 만든 시설을 월 운영비 몇 백만원이 없어 이렇게 방치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는 조만간 새로운 운영 주체를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수익전망이 불투명한 마당에 지금과 같은 운영체제로는 나아질 게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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