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진보적' 성향은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달라졌기 때문일까.미디어 모니터 단체인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2003년 한국 영화 속의 여성'은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전례 없이 강한 여성성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보고서가 주로 대중 문화 속 여성상이 왜곡되고 있다는 우려를 피력하는 데 비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분석 대상이 된 영화는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감독 정흥순), '동갑내기 과외하기'(감독 김경형), '장화, 홍련'(감독 김지운), '바람난 가족'(감독 임상수), '싱글즈'(감독 권칠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이재용) 등 6편. 보고서는 '스캔들'이 과거 여성을 통해 현대 여성의 성 도덕과 담론을 유도했으며, 다채로운 사랑의 방식을 실천한 이들이 있었다는 상상을 통해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내렸다. 또 9년 간 수절한 정절녀 숙부인이 성과 사랑에 눈을 뜬 후 적극적으로 변하는 대목이나, 숙부인의 자살이 당대 도덕률을 깨뜨린 데 대한 단죄가 아니라 조원의 죽음에 따른 동반자살이라는 점에서 관습에 순응하는 기존 영화와는 다르다고 해석했다.
비록 하룻밤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남자 친구'로 남겨둔 '싱글즈'의 동미의 선택 역시 새로운 가족 형태를 만들려는 시도로 평가됐다. 미혼모의 길을 택한 주인공과 '아버지' 역할을 해주겠다며 결혼을 포기하고 남는 친구 등의 설정은 비현실적이고, 고단해 보이지만, 새로운 선택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 '바람난 가족' 역시 여성의 질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삭막한 가족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주목됐다.
물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영화가 갖는 문제도 적잖다. '바람난 가족'에서 남편인 변호사가 일하는 현장이 자주 보이는 데 반해 아내의 직업이 모호하게 그려지는 등 직업에 대한 묘사나 책임감이 부실해 여성들이 여전히 사랑놀음에 빠져 책임감이 없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올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진일보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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