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타니 다다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조사관임효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 국내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내년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C) 제28차 총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보류된 북한 고구려 벽화 고분에 대한 재심사가 여기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중국이 고구려 첫 도읍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졸본성)과 두 번째 도읍 지린(吉林)성 지안(集安·국내성)의 고구려 유적·유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데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국내 학계는 이 총회에서 북한 고구려 벽화 고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고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물만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중국의 논리가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9월 초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신청에 대한 심사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환런과 지안을 살펴보고 온 세계유산위원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조사관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 일본 규슈(九州)대 명예교수가 중국의 고구려 유물 발굴·보존 실태, 내년 쑤저우 WHC 회의 전망 등을 놓고 임효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와 대담했다. 동북아 고대사와 고고학에 정통한 니시타니 명예교수는 2000년 한국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지정 때도 조사관을 맡았고, 북한 고구려 벽화 고분에 대해서는 3월 서류 검토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동북아 각국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번 환런·지안 유적 조사를 혼자 맡은 니시타니 명예교수는 14, 15일 열린 삼불 김원룡 선생 10주기 추모식 및 추모학술대회에 참석차 방한했다.
임효재 교수= 중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유적과 유물을 조사하기 위해 최근 환런과 지안 지역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니시타니 명예교수= '고구려 수도와 국왕·귀족묘'(Capital Cities, Imperial Tombs and Noble's Tombs in Koguryo)라는 제목으로 중국이 신청한 유적·유물을 조사하기 위해 9월2일부터 8일까지 환런의 오녀산성과 고구려 유적, 지안의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국내성 유적 등 모두 40여 군데를 둘러봤습니다.
임효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중국이 대대적 유적 정비에 나서서 일대 경관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던데요?
니시타니=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중국은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뚜렷이 받았습니다. 중국 방문이 이번이 6번째로 4년 만에 처음이지만 전혀 새로운 곳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환런의 경우 오녀산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철거했고, 지안에서는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비 부근에 있던 600채 가까운 집들을 모두 이주했더군요.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 사이의 민가 수백 채도 없앴고 예전에는 국내성 성벽 일부만 보이던 것이 민가를 철거해 700m에 이르는 성벽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중국 당국자는 "앞으로 50년에 걸쳐서 가옥이나 시설물을 모두 유적지 외부로 옮길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임효재= 중국의 고구려 유물 발굴 성과와 현재 보존 상황은 어떻습니까?
니시타니= 추가 발굴 유적이나 유물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태왕릉의 경우 광개토대왕의 무덤일 것이란 추정만 있었지 결정적 유물이 없었는데, 지난해 거기서 '호태왕'(好太王)이라는 명문이 적힌 바늘을 발견했다며 지안 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더군요(호태왕은 광개토대왕을 이르는 말로 광개토대왕비문에도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란 구절이 등장한다). 또 환런 부근에서 장군분이라고 부르는, 주로 꽃으로 장식된 벽화고분군을 발견했고, 오녀산성에서는 궁궐 터와 보루(堡壘) 장대(將臺) 등 군사시설, 동·남·서 문터를 추가로 발굴해 보존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환도산성(丸都山城)에서도 궁정터를 발굴했고 산성에서는 처음으로 팔각형 건물터를 찾아내 보존하고 있습니다. 원래 10월 말까지 조사 보고서를 ICOMOS에 내야 하는데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보고서가 공개되면 제가 그곳에서 보고 놀란 것처럼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학자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임효재= 민가 이주 등 중국이 중앙 정부 차원에서 유적 발굴과 보존을 위해 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니시타니= 중국의 환런·지안 유적 발굴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임을 세계에 알리려는 게 배경으로 여겨집니다. 세계문화유산 신청서에도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의 고대 국가'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방문 당시 저 한 사람을 위해 중국 관료 20여 명이 매일 수행하면서 유적을 안내하고 설명한 데서도 중국이 정책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국무원 직할 부서인 국가문물국의 장바예(張柏) 국장 등 중앙 정부에서만 5명이 파견돼 나왔고 랴오닝성 문물처장, 지린성 문물고고연구소장, 지린대 교수 등이 수행해 유적·유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임효재= 내년 세계문화유산 지정 후보인 북한의 벽화 고분과 중국의 고구려 유물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니시타니= 북한의 고구려 벽화 고분은 동아시아의 대표적 고대 유물입니다. 그리고 벽화 자체만 놓고 봐서는 북한이나 중국의 것 모두 귀중한 유물이며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납니다. 중국은 보존지구가 매우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유적이 있는 곳을 보호구역으로 정한 것은 물론 그 주변 지역까지 완충 지대를 설치해 허가 없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범위가 보통 유적 주변 수천 정보에 이릅니다.
임효재= 내년 쑤저우에서 열릴 WHC 회의에서 북한 고구려 벽화와 중국의 고구려 유물 세계문화유산 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까?
니시타니= 결과를 알 순 없습니다. 하지만 올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은 북한의 고구려 벽화 지정을 분명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WHC 회의에서 '보존 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지정 보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서류로 검토한 결과 북한 벽화의 보존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정 반대 논리를 폈는데 주장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동명왕의 무덤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데다 주변에 현대 석조물들이 서 있다, 둘째 현재의 동명왕릉은 실제 고구려 건국 시조인 동명왕의 무덤이 아니다, 셋째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벽화의 진위와 고고학적 가치이지 주변 시설물이나 규모는 핵심이 아니라고 제가 반박했습니다.
임효재= 유적 보존 차원에서는 중국의 적극적 발굴을 좋게 볼 일이지만 고구려의 역사가 남북한과 중국으로 3등분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유물을 통해 고대의 역사를 알고 또 그것을 자국사로 세계에 알리는 것 아닙니까?
니시타니= 지금은 나뉘어져 있지만 과거에는 한민족의 한 나라였습니다.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을 총체로 보아야 합니다. 국경을 넘어 한 역사로 공동 연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서울 아차산성에서 나온 고구려 생활 유물도 상당히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북한은 이런 유물 발굴이 아직 별로 없거든요.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 학자도 참여해서 동북 아시아 학자들이 공동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최진환기자 choi@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고구려 태왕릉 디지털 복원/7단 구조… 한 변이 63m
고구려 두 번째 도읍인 국내성(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의 초대형 고구려 왕릉 태왕릉(太王陵)의 옛 모습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처음으로 복원됐다(사진).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현재는 유적만으로 원형을 알기 힘들며 규모는 장군총보다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복원 전문가인 박진호씨가 15일 백산학회와 충주문화원 주최로 충주에서 열린 고구려 국내성 천도 20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3차원 입체 영상으로 공개한 태왕릉은 피라미드식 7단의 방단식(方壇式) 구조로 제일 아래 단 한변 길이가 63m(장군총 33m)에 이른다. 1910년대 일본 학자가 작성해 '조선고적도보'에 수록한 태왕릉 평면도와 장군총 무덤 조사 및 연구 성과, 고구려 벽화의 건물 양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태왕릉은 장군총처럼 꼭대기에 향당(享堂)이라는 사당이 있다.
또 시신을 안치했던 관은 제7단 중앙에 있으며 계단 서쪽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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