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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감독" 이윤택, "한판 굿" 스크린에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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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감독" 이윤택, "한판 굿" 스크린에 벌이다

입력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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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이윤택(51)의 작품엔 힘이 넘친다. 갓 잡아올린 물고기의 펄떡거림이 느껴진다. 그가 자신의 분신인 연희단거리패 단원을 이끌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문제의 작품은 바로 13년 간 270만명의 관객을 불렀다는 연극 '오구'다. 1986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시나리오로 대종상 각본상까지 거머쥔 시나리오 작가이니 만큼 영화 데뷔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오구'는 먼저 이윤택 식의 고집스러운 화법이 귓전을 파고드는 영화다. 저승사자 셋이 벌거벗고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설정을 비롯해, 이들이 개와 파리로 변신하는 과정은 이윤택이 아니면 영화 속에 쓸 염두도 하지 않을 것들이다. 78세 황씨 할머니를 비롯해 동네 어귀 나무 그늘이며, 부락 회의와 굿판, 나아가 스크린을 휘어잡는 노인들의 활약 등도 빠뜨릴 수 없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생명력 넘치는 남성 누드가 이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을까. 코미디 아니면 블록버스터 밖에 없는 단조로운 영화판에 이단아처럼 나타난 '오구'는 또한 서울이 아닌 밀양과 부산의 자본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영화다.

씻김을 통해 삶과 죽음을 말한다는 점에서도 '오구'의 묵직한 주제의식은 충무로 영화에서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굿판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의 해묵은 원한을 씻어낸다는 주제나, 한국식 뮤지컬이라 할 만한 노래와 춤의 개성적인 양식 또한 매우 독특하다.

'오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마지막 대사처럼 '태어날 때도 떠날 때도 인생은 축제'라는 것. 황씨 할머니(강부자)는 꿈에서 저승사자를 만난 뒤 장롱 밑에 고이 숨겨둔 통장을 꺼내 자식들에게 굿판을 치러달라고 부탁한다. 지상에서 맺혔던 것을 모두 풀고 가고자 하는 게 그녀의 마지막 바람. 동네 사람들은 굿판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어긋난다며 반발하지만 무당 석출(전성환)과 그의 자식들이 벌이는 신명나는 굿판을 누가 마다할 수 있으랴. 저승과 이승을 씻김굿 한 판으로 통하게 하는 이윤택의 상상력은 무당 석출의 딸 미연(이재은)이 죽은 애인의 어머니인 황씨 할머니에게 '오구 대왕풀이'를 불러주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탄생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화해를 신명나는 굿판에 담은 '오구'는 여러 의미에서 희귀한 영화다. 귀로 파고드는 연극적 감동을 영화에서 맛보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단, 이윤택의 연극적 화법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28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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