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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2차·3차 술 문화뒤의 "공동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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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2차·3차 술 문화뒤의 "공동체의식"

입력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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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전공이 고고학인 탓에 한국 고고학자들과 야외 발굴작업과 실내 유물정리작업 등을 했다. 그를 통해 한국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한국 사람들은 출근 시간은 잘 지키면서 퇴근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근무시간은 보통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인데 출근이 늦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고 혹 10∼20분이라도 늦으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퇴근은 6시가 아니라 '6시 이후'라는 편이 옳다. 먼저 퇴근하라면서 중국집 전화번호를 누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오전 10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 일반적인 러시아에서는 중간에 볼일이 있으면 일찍 나가기도 하고 늦게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 일에 파묻혀 사는 것도 모자란지 한국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자주 동료들끼리 술을 마신다. 2차, 3차라면서 술을 마시다가 다른 자리로 옮겨 술을 더 먹는다. 러시아에는 2차, 3차가 없다. 대신 술 먹다가 바람 쐬고 오자면서 산책하고 다시 술을 먹는 경우는 있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영하 20∼30도의 바람을 쐬면 확 깬다.

한국 사람들의 술자리는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생활을 위한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술을 먹으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다. 특히 술자리에서 잔을 돌리는 습관이 이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에서는 직장동료와 친구를 동일시 하지 않는다. '꼴레기(직장동료)'와 '깜빠니야(친구)'는 분명히 다르다. 러시아에서는 대부분 직장 일을 끝내고 바로 집으로 간다.

게다가 러시아에서는 술이라고 하면 알코올 중독을 연상하기 때문에 술 마시는 것을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횟수는 한국사람이 훨씬 많지만 알코올 중독자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술 마시는 습관의 차이인 것 같다.

한국에 와서 혼동했던 것 중 하나가 "술을 마신다"와 "취한다"라는 말이었다. 보드카 1∼2잔이나 맥주 몇 병을 마시는 것을 두고 러시아에서는 술을 마셨다고 하지 않는다. 또 취한다는 말은 한국에서는 알코올 기운이 올라와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를 말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거의 인사불성이 되거나 비틀대는 상태를 말한다. 노래방에서 노래까지 부르고 집에 웃으며 돌아간 사람이 다음날 "어제 술에 취했다"고 말하다니.

한국인은 가정보다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술자리도 많다. 아마도 경쟁과 공동체라는 한국 사회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일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어느덧 한국 사람처럼 일하고 놀게 되었다. 자신만 잘되기 위해서 일하는 매정한 모습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의식이 숨어있는 따뜻한 모습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 수보티나/러시아인·서울대고고미술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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