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모래가 빚은 작품입니다. 저는 빛과 각도를 고려해 렌즈를 들이댔을 뿐이죠."미국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김인태(56·사진)씨가 작품집 '바람의 그림(Wind Drawing)'을 냈다. 1981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남동부 사막지대인 '데스 밸리(Death Valley)'의 장엄하고 기묘한 풍경을 담은 그의 첫 사진집이다.
그가 20년 동안 촬영한 사진은 '죽음의 땅'이라는 이름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하다. 그 역시 그런 대자연의 모습에 반했다. "주로 해뜨기 직전이나, 해가 진 직후의 장관은 매혹적입니다. 20년 넘게 찍고 다녔지만 볼 때마다 새로워요."
대부분 흑백사진인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곡선의 조합과 명암밖에 없는데도 그 맛은 독특하다. 탐스러운 여체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굴곡이 있는가 하면, 잔잔한 모래물결을 배경으로 한 기하학적 문양도 보인다. 그가 이런 모습을 포착하기까진 엄청난 땀과 정성이 필요했다. 이 지역이 여름에는 최고 섭씨 58도까지 올라가는 데다 밤이면 기온이 급강하하고, 가끔씩 몰아치는 모래바람과 주변을 떠도는 야생동물과도 싸워야 했다.
"보통 2∼4일 일정으로 밤샘작업을 하고 돌아옵니다. 새벽 동트기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다가 10∼20초 사이에 작업을 해야 하고, 낮에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능선과 빛의 각도를 주시해야 합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또 1, 2년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게다가 봄 가을 겨울에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발자국이 많기 때문에 무거운 장비를 갖고 사막 안으로 무작정 2, 3㎞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할 때도 많았다. 일단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주변 캠프장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방울뱀을 깔고 앉은 적도 있었고, 전갈에 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캄캄한 사막의 밤에 총총한 별을 바라보고, 이름 모르는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과의 대화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사막뿐 아니라 미국 곳곳을 돌며 꽃과 계곡 등의 아름다움을 사진집에 담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서라벌예술대학 사진학과를 나와 81년 미국 이민을 떠난 김씨는 그 동안 8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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