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에 책을 썼다. 초록(抄錄) 같은 것이었다. 그 동안의 공부를 한번 정리해보고, 제자들의 방향을 잡아주려는 뜻이었다. 이 책으로 강의를 해오면서 모자라다고 생각한 부분, 새로 깨달은 부분들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고쳐 넣었다. 그렇게 해서 올 여름 비로소 번듯하게 하드커버를 씌운 책이 나왔다. 그깟 책 한권 쯤이야 가벼운 재기(才氣)나 아이디어만으로 쉽게 툭툭 써내는 세태에서 완결까지 20여년이 걸린 책이라니. 서울대 오병남(吳昞南·63) 교수가 펴낸 '미학강의(美學講義)'다.이 책에서는 그래서 오래 묵은 장맛 같은 게 느껴진다. 세월만큼의 정성과 손맛이 눅진하게 우러나오는. 제자들은 서슴없이 미학공부의 로드 맵(Road map) 같은 저작이라고 평가한다. 개론서 성격의 이 책에 올해 '열암 학술상'이 주어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난해한 미학이론을 소개하는 것은 문외한인 기자의 능력 밖이다)
가치와 사고가 온통 뒤틀리고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더욱이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는 상황 속에서 인문학자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담백하게 그 외길을 걸어온 노(老)교수의 삶은 딱 그가 쓴 책을 닮았다.
오병남 교수는 보통 인문학자라면 떠올리는 단아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무골(武骨)이다 싶게 행동이나 말투, 웃음소리가 거침없고 호탕하다. 사실 그는 원래가 운동선수 출신이다. 경기고 시절, 그것도 가장 거친 종목으로 꼽히는 럭비를 했다.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한 오인환·吳隣煥 전 공보처장관과는 럭비부 동기로 절친한 사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인문학을 할 생각을 하게 됐을까. 고교 때 친구 부탁으로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답시고 미술반을 들락거리다 지도교사였던 최경한(崔景漢·71·현 서울여대 명예교수) 화백의 눈에 띄었다. "너 미학 한번 해봐라." "그림 못 그려도 됩니까?(그게 뭔지도 몰랐을 때였으니)"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덜컥 진로를 정해 버렸다.
의대 진학을 기대했던 아버지에게 아들의 결정은 충격이었다. 다들 돈 되는 공부하기를 바란 건 그때도 마찬가지였거니와, 더욱이 미학은 당시로선 이름조차 생소한 학문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가족에게 "저 놈 졸업식에는 아무도 가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에게는 그래서 고교 졸업식 사진이 없다) 서러움에 오기가 치밀었다. "그래, 내 끝까지 한번 해보리라."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해서는 그야말로 무섭게 공부만 했다고 했다. "아버지께는 참 회한이 많지요. 그렇게 엄하게 대하시던 분이 대학 3학년 때 문득 불러서는 '미학이란 게 알고보니 할만한 거더라. 열심히 해봐라. 그거 해서 장가 가기야 힘들겠지만 그것도 다 팔자 아니겠냐'고 말씀하십디다. 처음으로 아들의 공부를 인정해주신 거지요."
그가 훗날 모교에 전임으로 자리를 잡은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품을 정리하는 데 시골집 벽장에서 난데없는 일본어 미학책이 여러권 나왔다. 호되게 야단을 치고도 도대체 아들놈이 하는 공부가 뭔가해서 몰래 구해 읽으신 책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간혹 "얘, 허버트 리드(영국의 유명한 예술철학자)란 사람이 대단하더라"고 뜬금없이 말을 던져 놀라게 하시곤 했었다. "이게 부정(父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집디다. 겉으론 차마 표현을 못하셨지만 말없이 아들의 공부를 이해하고 격려해주시려 했던 거지요." 낡은 그 책들은 지금도 그의 연구실 책장 한 켠에 소중하게 모셔져 있다.
― 무섭게 공부했다는 데 어떻게 한 겁니까."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운동할 때 대시(이건 럭비 용어다)하듯 그저 해대는 것 뿐이지요. 읽고, 생각하고, 말해보고, 써보고…. 그게 인문학 공부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생각하고 쓰려면 우선 많이 읽어야 합니다. 뭔가 머리 속에 잔뜩 든 게 있어야 생각이 나오지, 바탕도 없이 하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는 서재에 꽂힌 오래된 원서하나를 뽑아 보여 주었다. 맨 뒷장에 펜글씨로 '92년(단기 4292년이니 그가 대학 1학년이던 1959년이다) 12월17일 새벽 3시30분'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때 완독했다는 표기다.
여기서부터 오 교수의 얘기는 본격적인 인문학 방법론으로 흘렀다. 하기야 한번도 학교 밖으로 곁눈 주지않고 오로지 연구실을 지켜온 그에게 무슨 드라마틱한 삶의 곡절이 있으랴. 딱 한번 진로를 고심한 적이 있다고는 했다. "30대 조교수 때였지요. 동창들 중에서 이미 명성을 얻은 이도, 뭔가 화려하게 세상을 사는 것 같은 이도 있고…. 세상 밖으로 나가볼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만류합디다. 너 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사회에서 스타플레이어가 돼볼까 하는 생각을 그때 접었습니다." 언론계에 친구가 숱한데도 그는 그 흔한 칼럼난 하나, 기사 하나 부탁해본 적도 없단다. 그러니 공부 얘기나 계속 들어볼 밖에.
― '인문학의 위기'라는 데 동의합니까?
"인문학은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죽을 수도 없구요. 인문학은 모든 공부의 기초이자, 지혜를 배우는 학문이지요. 플라톤이 얘기한 로직(Logic), 레토릭(Rhetoric), 그래머(Grammar)란 게 결국은 제대로 생각하고 쓰고 말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걸 실용적, 도구적 차원에서만 논하다 보니까 위기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인문학부, 또는 인문학자의 위기라고는 볼 수 있지요."
― 인문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까?
"많은 학생들이 기본적인 읽기 능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읽는다는 건 문맥을 파악하는 일이지요. 고교 때 배운 '문단 나누기'하고 다를 게 없어요. 그걸 내내 과외선생이 해주는 대로 외우기만 해왔으니. 대학원생들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지금은 내가 과외선생이다. 그런데 난 문단 나누기는 안 가르치니까 스스로들 읽고 깨우치라'고."
― 그래 갖고는 학생들을 끌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다들 학생잡기에 난리인데.
"저는 오히려 친구따라 강남가듯 대학원에 진학하는 제자들을 말립니다. 너는 차라리 장사를 하고, 넌 기자시험 보고, 넌 관리를 하라는 식으로. 인문학은 우직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부생들에게는 다른 학과과목을 두루 들어보도록 권유합니다. 적성이 인문학 공부에 맞는지부터 알아보라는 뜻이지요."
그런 그는 뜻밖에도(돈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므로)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에 산다. 더 놀라운 게 거기 산지 24년째다. 자녀 둘을 키워 내보낸 31평 집은 하나 손대지 않은 채 1979년 지어져 입주할 때 그대로다. 전기구를 고치러 온 기사가 "세상에, 이 동네에서 이렇게 사는 집은 처음 봤다"며 기겁했을 정도라니까. "결혼 후 후배 집 등을 전전하다 학교가 좀 가까워 보여서 친구 권유로 들어간 집입니다. 주변이 온통 진흙 벌판일 때였지요. 그 돈 갚느라 오래 고생했어요."
"그래도 요새 재개발 붐 타고 좀 기대가 되지 않느냐"고 슬쩍 물었다. "어이구, 그러지 않아도 그 때문에 골치 아팠는데 부동산대책으로 재개발 얘기가 쑥 들어갔어요. 그거 하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한테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번거롭지 않게 편히 살게 됐으니." 당당한 풍채에도 불구, 그에게서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다.
공부 외에 오병남 교수가 애착을 갖는 유일한 일은 나무심기다. 15학기 전(그의 세월계산 방식이다. 그러니까 7년반 전) 유학 떠나는 제자에게 "몇 년 못 볼 테니 학교 안에 나무나 한그루 남기고 가라"고 해 시작한 일이다.
그 뒤로 사재를 들이거나 학위 획득, 결혼 등 기념할만한 일이 있는 제자들에게 기증 받아 나무를 심었다. 소나무, 단풍나무, 미루나무 등 일곱 종 수목이 벌써 수백그루다. 삭막한 돌 뿐이던 인문관 뒷동산은 교내에서 가장 우거진 숲이 됐다. 학교에서는 그의 호(號)를 따 '정암(鼎岩)동산'이란 큼직한 표석을 세웠다. 요즘도 토·일요일이면 꼬박 학교에 나와 제자들과 나무를 돌보고, 매일 출퇴근 때마다 비닐봉지를 들고 이 숲길을 지나며 쓰레기를 줍는다.
― 식수(植樹)가 공부하고도 관련이 있습니까?
"그럼요. 아, 인생이란 게 뭔가 가꾸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 그게 그가 변함없이 믿어온 인문학자로서의 삶이다. 어차피 세속의 명리(名利)야 한철 잠깐 피었다 지는 꽃처럼 부질없는 것이려니.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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