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조기 주권이양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이라크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라크의 이라크화'로 불리는 정책 전환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의 강력한 저항과 미국의 여론 악화, 내년 대선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불투명한 데다 실행과정에 엄청난 난제를 안고 있어 미국의 의도대로 될지 미지수다.조기 주권 이양 시간표
미국은 당초 내년 말께 이라크에 주권을 반환하려던 방침에서 선회, 내년 상반기 중 총선 실시 및 11월 미 대선 전 과도정부 수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미국은 지금까지 주권이양 과정의 출발점으로 내세웠던 선(先) 헌법제정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을 계획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3일 "이라크인에 대한 더 많은 권한 이양은 앞으로 1년이 훨씬 안 되는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제헌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주권이 이양될 것임을 의미한다. 헌법 제정 이전에 통치권을 넘겨 받는 것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12월 15일까지 헌법 제정과 총선 일정을 제시하도록 요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지난달 통과)도 힘을 얻게 됐다.
미군 철수 어떻게 되나
이라크 주권 조기 이양 가능성을 곧바로 미군 철수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 미국은 과도정부에 통치권을 넘기는 것과 미군 철수를 별개로 여기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상황이 안정되지 않으면 이라크측에서 오히려 미군 주둔 유지 요구가 나올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12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전에는 병력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조기 철군 계획은 없으며 미군은 필요한 만큼 머물 것"이라고 못박았다.
다만 주권 이양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이라크 자체 경찰·군사력이 이른 시일 내에 안정된다면 미군 병력 감축이 예상보다 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관측이다. 하지만 상황이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철수 시한은 예상하기 어렵다.
반미 저항 어떻게 될까
미국이 조기 주권이양 수순에 들어간다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수그러든다는 보장은 없다. 저항세력의 향후 동향은 대체로 두 가지 변수에 의존한다.
우선 미 주둔군의 태도다. 미군이 주권이양 계획에 따라 수세적 자세로 돌아선다면 저항군은 이를 자신들의 승리로 여겨 공격 강도를 높일 개연성이 있다. 역으로 미군이 안정적인 주권이양의 토대 마련을 위해 저항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경우 더욱 격렬한 반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군은 최근 저항세력의 공격이 잇따르자 '쇠망치 작전'(Iron Hammer)이라는 명칭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펴고 있다.
둘째는 헌법제정과 총선실시 과정에서 각 분파의 이익이 얼마나 수렴될지가 문제다. 주요 저항세력 중 하나였던 후세인 추종세력은 수니파가 배제된다면 반발적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존 아비자이드 미 중부사령관이 13일 "현재 이라크에는 위험한 후세인 추종세력이 5,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듯이 친 후세인 세력은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다.
이라크 내 각 세력은 또 주권이양 과정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미군은 진퇴양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다국적군 파병 각국 동향은
미국의 전략 변화에 따라 각국의 이해득실 계산도 다시 시작되는 모양새다. 각국의 태도는 크게 대미 지원 재확인 관망으로 후퇴 파병철회 유엔 기치로 전환요구 등으로 나뉜다.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호주 필리핀 등은 기존 파병군을 유지하거나 보강할 것이라고 밝혀 대미 우호를 과시했다. 특히 영국의 잭 스트로 외무장관은 13일 자국군의 전력 강화와 증원군 파견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도 나시리야 사태에도 불구하고 주둔군을 유지하겠다며 대미 지원을 재확인 했다. 반면 연내 파병 의사를 분명히 했던 일본은 13일 "상황을 면밀히 살펴가며 판단하겠다"고 말해 한 발을 빼는 자세를 보였다. 터키는 파병 결정을 철회했고 이집트와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은 파병불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등은 미국의 주권 조기이양 방침을 긍정평가하면서도 그 시기를 더욱 당기고 치안유지 임무를 유엔평화유지군에 넘길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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