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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얼굴

입력
200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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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맥닐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2만2,000원

얼굴은 사람의 상징이다. 우리는 얼굴이 있으므로 비로소 사람으로 살고 있다. 얼굴은 곧 그 사람이다. 그래서 얼굴은 사회적 관절면(關節面)이다. 마치 뼈와 뼈가 관절을 사이로 만나서 운동이라는 기능이 생기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서 얼굴과 얼굴이 만나서 비로소 사회생활이 이루어진다. 얼굴은 개인 식별의 가장 중요하고도 간단한 도구이다. 상대방의 성별, 나이, 교양, 지식, 성격, 건강, 정서, 심리상태 등 개인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주민등록증처럼 지갑 속에서 꺼내 보여줄 필요도 없고, 이력서처럼 연도를 찾아 읽어야 할 시간이 걸리지 않고, 범죄자들이 여권의 사진처럼 간편하게 바꾸어 붙일 수도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간편하고 완전한 신분증이다.

그러나 정작 얼굴에 대해 가르쳐 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얼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에 대하여는 누구나 전문가이고 천재급이다.

우선 얼굴의 기억력을 보자. 20년 전에 헤어진 초등학교 동창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10년 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영어 단어나 한자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얼굴의 식별력도 대단하다. 50억 인구 중에서도 자기 가족의 얼굴을 가려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능력을 기계화하기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얼굴 해석력은 또 어떤가. 상대방의 기분, 감정의 동요, 이런 것들을 수십 수백 분의 1초 사이에 알아낸다. 이런 능력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얼굴학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얼굴에 대하여 가르치는 곳이 왜 없는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긴 세월 동안 얼굴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관상의 소스였지만, 이제 얼굴은 과학이다.

일본에는 얼굴학회가 있어 대학에 교양과목으로 얼굴학 강좌를 개설하는 등 꽤 성업(?) 중이다. 현대의 얼굴학은 얼굴이란 무엇인가의 얼굴과학, 의학과의 접점을 찾는 얼굴의학, 역시 테크놀로지와의 응용을 강구하는 얼굴공학, 그리고 얼굴과 관련한 문화현상에 대하여 연구하는 얼굴문화학으로 대별된다. 그러므로 얼굴학은 학제적 학문이다.

이 책은 얼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얼굴 각 부위의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1부), 문화·사회적 특성(2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얼굴의 신호, 즉 표정에 대한 분석(3부), 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검토(4부)까지 가히 백과사전적 박식함으로 얼굴에 접근한다. 무려 1,500개 항목에 이르는 찾아보기는 생물학·해부학·문학·역사·예술·사회학·심리학 등 다방면에서 얼굴을 집중 조명하는 지은이의 시선이 얼마나 폭 넓은 영역에 걸쳐 있는지 보여주는 표식이기도 하다.

604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시대와 지역과 분야를 가로질러 각 부위별로 얼굴 여행을 안내하는 지은이의 숙련된 솜씨 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를 구태여 얼굴학자라고 분류할 필요는 없지만, 그는 이 책에서 지칠 줄 모른 호기심으로 얼굴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잘 풀어놓았다. 공들인 번역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맞닥뜨리게 될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번역자는 꼼꼼하게 역주를 달았다.

'얼간이'라는 우리말을 보면 우리의 조상들은 얼굴을 우리의 정신인 '얼'과 관련 있는 부위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유난히 얼굴에 집착하는 특성도 얼굴을 '정신'과 결부해 보았던, 어쩌면 문화적 유전자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런 우리 한국인의 얼굴에 대한 타고난 관심이 발전해서 얼굴학 전공 희망자가 많이 나오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원서는 1998년에 나왔다. 연전에 해부학자 한 분이 해외에서 사서 선물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실은 내년 얼굴연구소 개소 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출판하고자 번역을 거의 마친 터였다. 그런데 벌써 번역서가 나왔다. 뭐든지 부지런히 서둘러야겠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조용진(한서대학교 교수·부설 얼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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