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영 지음 황소걸음 발행·8,500원
귀농 살림이나 산골 생활을 다룬 책들이 워낙 많아서 이 책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느리게 살아라' '비워라'는 말도 이제 얼마나 상투어가 되었는가. 하지만 계룡산 갑사 부근 산골에서 6년 동안 뿌듯하게, 때로 고달프게 살아온 생활을 엮어낸 이 책에는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매력이 있다. 없어도 행복한, 물론 힘들고 싸울 때도 있지만 그것까지 다 보듬는 삶에 대한 애정, 가족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판 도시내기인 부인에게 "나만 믿으라"며 가족을 이끌고 덜컥 시골로 내려온 저자가 생활에 쪼들릴 때마다 하는 말은 "비우면 채워진다"이다. 한때 도를 닦겠다고 산에 몇 년 들어가 있던 이력이나 지금도 턱수염에 구레나룻을 기른 외양까지 더해 보면 저자는 수도자 풍모다. 하지만 "비우면 채워진다"에는 별난 뜻이 없다. 그냥 삶을 긍정하는 태도랄까, 성실하게 사는데 굶을 일 있겠느냐는 여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 책은 없이 살면서도 어떻게 그런 생활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족의 소박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네 가족 한 달 씀씀이 60만원.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을 200만원에 사들여 다른 집에서 뜯어내 버리는 목재, 이면 컴퓨터 용지 등 재활용품을 활용해 새로 만든 집. 농약이나 비료 치지 않고 텃밭 등에서 길러 먹는 채소.
두 아들 옛 기저귀로 평상복이며 외출용 원피스를 꽤 솜씨 있게 만들어 입는 아내. 한때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가 또 한때는 수도자연했다가, 잡지 편집도 하고, 지금은 지방 방송국 다큐멘터리 작가 등등을 하며 한 달에 20만원도 벌고 100만원도 버는 욕심 없는, 아니 행복하게 사는 데는 별로 큰 돈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사는 모습이다.
그들의 욕심 없는 생활은 먹고 입는 데만 국한된 게 아니다. "책 역시 어쩌다 선물 받은 도서상품권으로 일 년에 한두 권 정도 구입하는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큰 책장에 책이 가득합니다. 얻은 책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아내가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아이들이 따라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자는 "학원에 가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보다 처질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배우는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답니다.…집에서 보통 일주일이면 배울 것을 학원에서는 한 달 이상 질질 끌며 가르치는 것 같더군요"라고 생각했다.
혹시 "적게 입고 살아라, 나는 많이 먹고 입고 살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또 이런 말도 들려준다. "(적게 입고 먹고 살면)자연이 덜 파괴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적게 입는 대가로 맑은 하늘, 맑은 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거 그게 다 어떤 형태로든 자연을 쥐어짜서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농촌이나 산골, 아니 사는 곳이 어디든지 참생활이란 살림살이 꾸려가는 사람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구나는 생각이 번쩍 든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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