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 들여 추진하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이 근정전 완공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전폭적 공감 속에 이뤄지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하나는 순수 역사적 입장에서 고전의 복원 사업이라는 의미이다. 도시는 자신의 나이에 맞는 기록과 기억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도서관에 가면 문서로 역사의 기록이 남아있듯 도시에는 고전 건축물이라는 유구(遺構)로 그것이 남아있어야 한다. 문서는 전문학자를 위한 것인 반면 고전 유구는 일반 대중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구를 통한 역사의 기록은 문서보다 더 기본적이고 일차적이다.
고도(古都)가 넘치는 유럽에서는 이렇게 역사의 길이에 합당한 유구를 갖는 도시를 박물관 도시라고 부른다. 박물관 도시는 한 나라의 국력과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가장 근원적인 잣대이다. 박물관 도시는 수백 수천의 말보다 더 확실하게 역사를 증명해주는 웅변이다. 우리는 이런 박물관 도시를 갖지 못했다. 경복궁 복원은 서울이 600년의 역사를 이제 비로소 올바로 기록하기 시작하는 첫걸음에 해당한다.
부디 이 사업이 힘을 얻어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종로 한옥촌'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구(舊) 도심이 모두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또 하나는 최근사의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지우는 작업이라는 의미이다. 경복궁이 복원되기 위해서는 경복궁을 점령해 오점과 치욕을 덧씌운 일제의 잔재를 지우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 한때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놓고 졸속 결정이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600년 수도의 심장 한 가운데 비수처럼 꽂혀있던 피식민 과거의 대표적 상징물을 철거한 일은 백 번 잘한 일이었다. 고전 유구의 힘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하다.
광화문 앞을 오갈 때마다 복원된 경복궁을 보는 것과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복원된 경복궁을 보면서도 일제 강점이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지 않느냐는 노예의 자발적 굴종 같은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또한 최근 일본의 과거 회귀 움직임에 맞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게 우리의 자존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임 석 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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