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이란 자조적 단어가 말해주듯 지금 우리 사회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이슈는 실업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청년실업은 젊은이를 절망에 빠뜨리고, 중·장년실업은 사회를 붕괴시키며, 노년실업은 국가의 큰 짐이 되고 있다.고용구조마저 소수의 고소득층과 다수의 저소득층으로 양분되고 사회의 안전판인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중산층을 길러냈던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자리를 지키고, 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사회에 절실한 과제다.
최근 일자리 창출을 생각하는 모임인 '뉴패러다임포럼'이 생겼다. 이 모임의 세미나에서는 노사의 대타협으로 4조2교대제를 정착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경쟁력도 키운 기업의 사례가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회사는 어느 곳일까.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과 Hewitt등 몇 개의 전문기관은 유한킴벌리를 2003년 아시아 및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평가했다. 이 회사가 얼마 전 신입사원을 모집했는데 경쟁률이 450대 1이었다고 하니 과장된 평가는 아닐 듯 싶다.
유한킴벌리는 여성생리대 등 가정용품 생산업체다. 1980년대에는 과잉설비에다 심각한 노사분규로 위기를 맞았던 기업이다. 시대의 총아인 정보통신분야도 아닌 이 회사가 어떻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직장으로 변신했을까. 이 기업이 밝힌 작년 실적은 매출 7,100억원에 순익은 840억원이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은행 빚이 없을 뿐 아니라 퇴직금을 비롯하여 140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는 점이다. 영업이 잘되니 봉급이 괜찮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종업원에게 월급액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직장이 제공하는 안정감과 성취감이다. 유한킴벌리는 종업원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이 회사가 이룩한 평생직장의 개념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아래 종업원을 내쫓는 요즘의 흐름과는 전혀 다르다.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은 고용을 늘리면서 기업경쟁력을 향상시킨 비결을 평생재충전으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인사관리 방식을 들었다. 예를 들면 생산직의 4조 2교대제를 통해 33%의 증원효과를 내고 종업원에 대한 취미활동과 재충전교육에 참가하게 하며, 관리직 인원 중 20%를 일상업무가 아닌 아이디어 개발과 재충전 교육 등 미래 지향적인 예비인력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기우뚱거리던 유한킴벌리가 되살아 난 것은 바로 이러한 인사제도를 정착한 덕분이라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문 사장은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토지 건물 등 고정비 성격의 기업비용을 줄이고 이를 인적자원육성에 투입한다면 기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경제개발로 경쟁력이 약화되는 한국기업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국제경쟁력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 사장을 비롯하여 뉴패러다임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일자리창출 방안으로 교회모델이 있다. 신자가 늘어나면 교회건물을 증축하여 특정 목사가 설교를 독점할 것이 아니라 교회를 그대로 두고 예배를 여러 차례 나누면 여러 사람의 목사가 필요해진다. 교회서비스를 너무 단순화한 감이 있지만 토지나 건물 보다는 사람을 활용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재미있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시간을 저녁시간까지 늘리면 시민도 편리하고 직원의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노동자의 시위로 분위기가 썰렁한 상황에서 이런 방법의 일자리 만들기는 현실성 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자리는 결국 기업의 생산현장이나 공공기관의 서비스 현장에서 생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회적 타협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최소한 중국에 일자리를 뺏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 수 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