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이지만, 국회의원은 총선에서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일본 정가에서 나왔다는 이 말은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회자된다.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처절한 얘기이다. 일선 취재 시절엔 "의원 때 면제됐던 민방위훈련 통지서가 낙선하자마자 득달같이 날아들더라"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들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짐짓 오금 저린 몸짓으로 정치개혁 협상에 나설 정당들에 철칙이 있다. "무슨 욕을 먹더라도 현역을 우선하라."■ 돈 먹는 정당구조 혁파, 정치자금 투명화 같은 것은 포장만 잘하면 국민 눈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정당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협상이 어떻게 굴러갈지 뻔히 보인다. <의원 수는 어떻게든 늘려야지. 국민 눈총이 예사롭지 않아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면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를 늘리면 될 걸. "각 분야 전문가가 들어갈 왜 줄이냐"고 하면 그것을 명분 삼아 전체 수를 되고. 선거구 획정? 그야 현역이 살아남게 하는 것이 통폐합의 절대원칙 아닌가. 제도도 그래. 터놓고 말하자면 우리가 많이 당선될 선거구제가 어떤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야? 돈 드는 게 소선거구제인지, 중대선거구제인지는 따져봐도 결론이 나지 않잖아.>의원>
■ 이러다 보면 깨끗한 정치라는 명제도 엉뚱하게 흘러가게 된다. <기업의 법인세 1%를 선관위에 기탁하게 해서 나눠 쓰면 그게 얼마야. 세금이 좀 더 들어가더라도 완전선거공영제가 국민들 염원 아닌가.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를 하자는데 혈세가 들면 어때. 지구당·후원회 폐지는 어떻게 되느냐고? 반대론도 많아 묘하게 됐어. 불법대선자금 문제때문에 엉겁결에 내놓는 바람에…. 뭐, 그대로 두게 되면 좋잖아.>기업의>
■ 정치인이 자기 밥그릇 챙기려는 행태를 비난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업소를 협박해 돈 뜯는 조폭 같은 어떤 당 사무실엔 100억 돈다발이 쌓여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말에 분노가 치미는 것은 그때뿐이고, 엎드렸던 정치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지개를 켠다. 그래서 어제 국회 자문기구로 발족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막무가내 정당들 틈새에서라도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데, 정당들이 자문기구 의견이라고 내팽개치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번에야 말로 국민이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 그러고도 안되면 '총선 심판'이다. 그땐 현역부터 본때를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규식 논설위원 kscho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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