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1일 통일·외교·안보분야 장관회의에서 재건부대 중심의 이라크 파병 지침을 내린 사실이 13일 드러나면서 같은 날 국방부가 이와 배치되는 브리핑을 한 것이 청와대에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은 11일 오후 2시 국방부에서 브리핑을 통해 "군사적 측면이나 인도적 측면으로 봤을 때 독자적 지역책임부대의 파병이 훨씬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일 오전 9시에 열린 장관회의에서 '파병규모는 3,000명 이내로 하고, 기능중심과 독자적 지역담당의 2가지 방안을 검토하되 지역담당도 재건지원을 중심으로 하라'는 노 대통령의 '파병 가이드라인'과는 뉘앙스가 완연히 다른 내용이었다.
차 실장은 브리핑에서 강한 어조로 "장병 안전, 국내 민간단체의 활동 보호, 현지수요와 우리군의 파병 능력을 고려했을 때 지역을 책임지는 포괄적 접근을 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종 결론은 아니지만 소요 분야, 파병시 효과, 미국의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 방향에 대해 정부 내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해 사실상 전투병 중심의 치안유지병력 파병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차 실장의 발언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은 11일 밤 "차 실장의 브리핑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 문책론까지 들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고, 차 실장 스스로도 다음 날 "한쪽 측면만 부각됐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정부일각에서는 차실장이 노 대통령의 재건부대 중심 파병방안에 대해 고의적으로 항명성 브리핑을 한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가 국가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한미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강력하게 주장해온 전투병 파병이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대통령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장관회의 결과를 종합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브리핑 전 파병 지침이 국방부 정책라인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차 실장도 "청와대의 파병지침을 알았다면 브리핑 성격을 달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관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까지 약 4시간 동안 과연 국방부가 청와대 지침을 통보 받지 못했는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회의 결과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침과는 동떨어진 브리핑을 해 국민에게 혼선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와는 별도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장관회의 직후 파병 규모에 대해 결정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브리핑 한 점도 대표적인 '밀실 행정' 사례로 지적된다.
한편 '대통령의 파병지침이 국방부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군의 고위관계자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뭐라 말 할 수 없다"고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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