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 환호와 찬사를 불렀던 영화 '매트릭스' 1편과 달리 완결편인 '매트릭스3―레볼루션'에 대해서는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3편은 1편의 신화를 깨뜨리는 어정쩡한 속편에 불과한 것인가, 제대로 평가해야 할 완결편인가. 두 영화평론가가 찬반론을 전개한다.
*스포일러 경고/이 글은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반전을 담고 있습니다.
'레볼루션'은 결국 장대한 신화의 세계에서 눈먼 메시아와 오이디푸스의 신화, 혹은 불교의 설화가 혼합된 신화의 진경산수화다. ' 매트릭스' 시리즈의 진정한 강점은 늘 자신의 속편을 부정하며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펼쳐 보이는 급진성에 있었다. 이제 '레볼루션'은 매트릭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뒤로하고 우리에게 다시 한번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기계와 인간이 함께 지구를 나누어 쓰는 그런 세계가 도래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은 알겠지만, 기계를 사랑하라니? 이 기이한 질문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의 가장 장대한 스펙터클은 네오와 스미스의 결투가 아니라 시온 저항군과 센티넬 군단의 혈투 장면이다. '보고 말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인간이 조종하는 거대한 자이언트 같은 기계들과 벌떼처럼 끝도 없이 달려드는 센티넬의 싸움은 우주적 혼돈 앞에서 펼쳐진 그 옛날 타이탄 족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네오와 스미스의 빗속의 결투는 매트릭스 안에 숨은 그림찾기로 박혀 있던 신화적 세계를 더욱 더 거세게 현실속으로 끌어 올린다.
이제 네오는 악당 스미스와 한 몸이 되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스미스를 제거한다. 스미스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네오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희생'이라는 인간의 의지를.
돌이켜 보면 매트릭스 1편의 핵심 이미지는 '반사'였다. 컴퓨터 스크린으로 네오와 악당의 안경에 반사된 이미지는 '네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말고, 알려고 하라'는 주체의 문제를 인식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2편에 와서 매트릭스는 겹겹이 쌓인 문과 열쇠의 이미지로 '행동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3편의 이미지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눈먼 네오의 눈에 비춰지는 '빛'과 어둠의 세계인 것은 아닐까. 어둠은 빛 때문에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매트릭스'는 그 둘 모두를 껴안는다. 철학과 대중문화를, 신화와 SF를, 쿵후와 디지털로 무장한 첨단 그래픽을. 진정 '레볼루션'은 전편인 '리로디드'가 허접한 신화학이 아니라 진화가 거듭되고 있는 속편이었음을 증명한다. 진정 '매트릭스' 시리즈는 포스트 모던과 시뮬라시옹의 세상과 심지어 휴머노이드의 세계마저 예언하는 '디지털 시대의 카산드라'인 것이다.
/심영섭
원흉(?)은 결국 세계 대중영화 사상 가장 혁신적 문제작 중 하나인 '매트릭스'(1999)가 아닐까. 그토록 고대하던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서도 2편 '리로디드' 못지않은 큰 실망을 맛본 건. 그들이 여느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너무나 닮았기에, 그 역사적 시리즈의 원조에서 체험한 충격적 혁신성·신선함 따위를 거의 찾아 볼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레볼루션'은 '혁명'은 커녕, '재장전(리로디드)'을 외쳤으나 불발에 그친 2편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다.
과도한 과잉으로 치닫는 동어반복적 액션, 숱한 자기복제적 이미지·사운드 등에 대한 불만은 접어 두자. 속편의 운명을 고려하지 않은 억지불만일 공산이 적지 않으니까.
네오와 트리니티의 '느끼한' 러브 신이 없다거나, 네오가 구원해야 할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면서 시온을 마치 멸망해 마땅한 성서 속의 소돔과 고모라처럼 환락·퇴폐적으로 묘사하는 모순 따위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도 2편에 없었던 3편의 덕목이라 할 수 있을 법하다.
심각한 문제는 스펙터클과 드라마의 조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그림 따로, 이야기 따로인 것이다. 그 환상적 액션 시퀀스가 공허하게 다가오고, 1편의 그 빼어난 극적 리듬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당연히 영화 속으로 흠뻑 빨려 들어 가기가 여간 힘들질 않다.
전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128분의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가운데 가장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망스러웠던 2편을 무색케 하는 치명적 문제점은 플롯 자체에서 드러난다. 단적으로 극 전개 상 불필요한 인물과 사건이 지나치게 많이 포진해 있다. 영화 내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신경을 써도 이야기를 온전히 파악하기 버거울 지경이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1, 2편을 DVD로 다시 한번 보고 난 지금도 그런 감상에 변함이 없다. 심지어 누가 누군지 가 아직도 헛갈린다.
설상가상 영화는 등장인물을 쓸 데 없이 빈번히 클로즈업하고 대사를 하게 함으로써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도록 방해·차단하는 우(愚)를 저지른다. 그로 인해 영화적 감흥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네오의 존재감을 축소하는 결정적 우로 나아간다. 이쯤 되면 대작 대중오락 영화로서 적절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전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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