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바로티는 잊어라. 여기 뉴 가이(guy)가 있다."2002년 5월11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한 낯선 테너가 시즌 마지막 오페라인 '토스카'에서 주인공인 카바라도시 역을 멋지게 해내자 미국 언론들이 보낸 찬사다. 이 사건은 당시 국내 언론도 외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 주인공인 살바토레 리치트라(34)의 첫 내한공연이 눈앞에 다가왔다.
12월5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유진 콘이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의 반주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청아한 아이다', '리골레토' 중 '이 여자도, 저 여자도',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등 오페라 아리아 위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스위스 베른 태생의 이탈리아계 신예 테너 리치트라의 미국 데뷔 성공담은 '토스카'의 마지막 장면처럼 극적이었다. 원래 이 역은 파바로티가 맡기로 했지만 공연 전 독감을 이유로 출연을 거부했다. 남은 기간은 단 이틀, 발칵 뒤집힌 극장측은 급히 대역을 수소문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매니저에게 전화를 받은 리치트라는 콩코드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다.
지휘자와의 리허설은 단 30분뿐, 무대에 오르기 직전 상대역인 우크라이나 출신의 명 소프라노 마리아 굴레기나로부터 "난 토스카고 당신은 카바라도시구요, 공연 걱정은 하지 말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살바토레'(이탈리아어로 '구원자'의 뜻)라는 이름 값을 톡톡히 해냈다.
단 한 번의 무대로 리치트라는 로베르토 알라냐, 호세 쿠라, 마르첼로 알바레즈와 함께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메이저 음반사인 소니 클래시컬은 발빠르게 '데뷔'라는 음반을 내놓았고, 뉴스위크는 2003년을 움직일 문화계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그러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유럽 무대에서는 이미 2000년부터 야외무대로 유명한 베로나 페스티벌 등을 통해 그는 이름을 날렸다. 데뷔는 98년 이탈리아 파르마 극장, 테너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의 리카르도 역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를 하다가 3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무대에 서기 시작했지만 그 이후의 성장은 눈부셨다.
이듬해 오페라 가수에게 꿈의 무대라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명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호흡을 맞췄고,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로 멋진 목소리를 들려줬다. 2000년에 나온 첫 음반인 소니 클래시컬의 '토스카' 실황판도 평론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번졌다.
그만큼 미국이 유럽에 비해 클래식 문화가 뒤떨어진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의 성공담은 우리에게도 그의 존재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리치트라의 소리는 스핀토(힘있고 극적인 소리) 테너. 늦게 성악을 배워서 음반에서는 표현이 아직 불안한 감이 있지만 최근에는 많이 향상됐다는 후문이다. 오페라 해설가인 박종호씨는 "작은 파바로티 같다"며 "노래를 조탁하는 재주가 있다"고 평했다.
이번 공연의 입장권은 2만∼8만원의 비교적 낮은 가격이어서 다행스럽다. 다음 공연에서는 지금보다 비싸질 게 분명하니까. 예술의전당측은 "국내에서 아직 인지도가 낮은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의 컨디션만 괜찮다면 불만을 남기지 않는 무대가 될 것이다. (02)580―1300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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