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잊혀졌지만 1988년의 가을은 '5공 비리' 수사로 요란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지 한참 되었건만,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5공화국 아래서 저질러진 각종 비리에 대한 수사는 비로소 이때 시작됐다. 그때도 수사주체는 대검 중앙수사부. 전국 검찰에서 수사력을 보강받아 특별수사팀까지 구성하는 등 뒤늦게 법석을 떨었다.지금처럼 재벌기업들이 정치권에 거액을 퍼준 것이 문제가 됐다. 정확히 하면, 일해재단 설립 등을 이유로 돈을 거둔 일이었으니 요즘처럼 여야가 모두 수사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5공 권력'이 타깃이었다.
그래서 맨먼저 검찰청에 불려온 사람이 전경련 회장이었던 A씨.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고 나간 다음날, 석간신문에 "A씨가 대선 때 노태우 후보에게 거액을 줬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재벌의 총대를 멘 A씨가 조사를 받던 중 난데없이 '5공 비리'와는 관계없는,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에 관해 불쑥 말을 꺼냈고, 그것이 흘러나가 한 신문에만 보도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재벌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청와대가 재벌수사는 그만하라고 한 것이다.
검찰청에 출입했던 15년 전의 기억을 꺼낸 것은 얼마 전 오스트리아에서 온 친구때문이다. 대학을 같이 다닌 그 친구는 그 시절의 '의식 있는 젊은이'가 그랬듯이 마르크스와 변증법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갖고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바탕이 리버럴한 친구라 교조적 사고에 빠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공부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학문의 길은 접었다. 비엔나로 옮겨 오랜 세월 사업을 하면서도 독일 통일, 동구권의 붕괴 등을 지켜보며 사회과학도로서의 열정은 아직 갖고 있는 그였다.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그 친구는 "네가 정치부장이니 더 잘 알겠지만, 난 멀리서 한국을 볼 때마다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라며 의외의 말을 던졌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얘기가 한창 화제에 올랐던 터였다. '부패를 관행이라고 우기는 우리 정치의 전근대성이 한심하다'는 정도의 말을 기대했던 나는 당연히 그 말의 뜻을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말하는 거야. 난마처럼 얽힌 사회적 모순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는 경우는 서구에서도 드물어.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지금 밝혀지고 있는 일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번 수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야."
정말 그랬다. 15년 전의 일과 비교해보니 그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 동안 검찰수사에 있어서 정치자금은 성역이었다. 정치인이 돈 받은 사건을 수사하다가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더러 정치자금법으로 기소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정치자금 자체를 수사대상으로 한 경우는 없었다. 대통령 자신이 '검은 돈'을 받아서 선거를 치르는 게 관행이었으니 권력에 묶인 검찰이 여야를 막론하고 어찌 정치자금을 수사할 수 있었겠는가.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잘 됐다는 생각이다. 관행에 따라 정치를 해왔는데 수사에 걸려드는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혹 억울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도 없이 정치개혁과 투명한 정치자금을 약속했던 그들이었기에 더 이상 '스스로의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 훗날 '계미년의 검찰정변(檢察政變)'으로 기록될 정도의 전면적인 수사를 기대한다. 다만 공정한 수사여야 한다.
신 재 민 정치부장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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