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규명 특검법안'이 10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특검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한나라당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정략특검', '방탄특검', '특검 만능주의'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 특검제가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는 '검찰수사 불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갈수록 정치적 이유에 따라 특검이 만들어지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도입 4년을 맞는 특검제의 공과에 대해서 짚어본다.
'측근비리 특검'은 1999년 옷로비 사건 및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2002년 이용호 게이트와, 올해 초의 대북송금 특검에 이어 5번째다. DJ정부 때 실시된 옷로비·파업유도·이용호게이트 특검은 모두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 관계자가 연관된 사건이었다. 또 검찰이 먼저 수사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축소·왜곡 시비가 뒤따랐던 사안이었다. 따라서 이들 특검은 미국에서 행정부에 소속된 검사가 자신을 지휘·감독하는 고위인사를 수사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이해의 충돌'을 막기 위해 특검제를 도입했던 것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대북 송금 사건은 검찰 고위인사나 '살아있는 권력'이 관련된 것도 아니고 애초에 검찰권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선 세 차례의 경우와는 다르다. 정치권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특검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연히 찬반 논란이 팽팽했고 지역적으로 의견이 엇갈렸던 것도 특검이 정치적 이유로 만들어진 데 따른 측면이 크다. 특검 수사결과에 대해 정치권 일부가 "정상회담을 수사대상으로 삼은 사법 테러"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대북 송금 특검 실시 여부가 논란이 됐을 때 지금의 열린우리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민주당 신주류측 의원 상당수는 찬성 입장을 보인 반면, 구주류로 분류됐던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했다. 그러나 이번의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의 경우에서는 정반대였다. 우리당은 반대와 거부권 행사를 주장한데 반해 민주당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정치적이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특검제가 이용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이번 특검의 수사대상중 양길승씨 관련 부분은 이미 검찰수사가 끝났지만 의혹이 풀리지 않은 상태이고 이광재씨 관련 의혹에 대해선 검찰이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 불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도술씨 등은 검찰이 수사중이고, 전과는 달리 검찰수사에 대한 여론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번의 경우에도 정치적 이해에서 특검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용석 변호사는 "검찰 내부 문제나 대통령 주변에 대해선 특검이 필요한 건 사실이나 아주 긴요하고 검찰수사가 완료된 뒤 이뤄져야 한다"면서 "자칫 '특검 만능주의'에 빠지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 역대 특검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별검사법의 국회 통과로 역대 5번째 특검팀 출범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특검팀들의 활동 내역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옷로비·파업유도 특검
우리나라 최초의 특검팀은 1999년 10월19일 동시 출범, 그해 12월20일과 17일에 각각 종료된 옷로비 특검팀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팀이었다. 최병모 특검과 양인석 특검보 체제의 옷로비 특검팀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 이형자씨 등이 김태정 법무부장관 부인 연정희씨와 강인덕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씨 등에 대해 벌인 옷로비 시도는 실제 있었다"고 결론내려 "실체 없는 배씨의 구상이었을 뿐"이라는 서울지검의 결론을 뒤집는 성과를 올렸다. 이 사건은 이후 대검 중수부 수사결과 "이씨 등의 자작극"이라고 한번 더 뒤집혔으나 법원은 특검팀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강원일 특검과 김형태 특검보 체제로 출범한 파업유도 특검팀은 대검과 정부 차원의 조직적 파업유도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샀다. 특히 김 특검보가 의견 충돌로 조기 사퇴하는 바람에 함승희 특검보가 중도 합류하는 등 팀 내부에서도 진통을 겪었다.
첫 특검제 시행 결과 수사범위 및 수사상황 공표 등의 지나친 제한, 짧은 수사기간(60일) 등의 문제점이 개선 대상으로 지적됐다. 여기에 특검팀이 관련자 기소를 거의 하지 않아 기소 및 공소유지 책임을 검찰에 미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용호 게이트'특검
대검 중수부의 부실수사 의혹에서 출범한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은 차정일 특검과 이상수, 김원중 특검보 체제로 2001년 12월11일∼2002년 3월25일까지 105일 동안 수사를 벌였다. 수사결과 특검팀은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와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인척 및 최측근을 줄줄이 구속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비리 정황 및 이 전 이사에 대한 신 총장과 김대웅 당시 광주고검장의 수사내용 유출 정황을 포착, 대검에 이첩함으로써 이들의 사법처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60일+30일+15일'로 수사기간을 대폭 연장했으며 특검팀이 피의자 기소 및 공소유지를 직접 담당하는 등 차별성을 보였다. 그러나 홍업씨 수사과정에서의 여당 반발 등 수사범위 논란과 2000년 5월 서울지검의 이용호씨 긴급체포후 석방 과정에서의 의혹을 파헤치지 못한 점 등은 '옥의 티'로 지적됐다.
대북송금 특검
대북송금 특검팀은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유보 선언에 따라 지난 4월16일 출범, 6월25일까지 수사를 진행했다. 송두환 특검과 김종훈, 박광빈 특검보 체제의 특검팀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등이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4,000억원 불법대출 및 대북송금 편의 제공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데 이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1억 달러를 지급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파문을 낳았다. 특검팀은 특히 현대가 이 과정에 박 전 장관에게 별도로 150억원을 제공했다는 정황을 포착, 대검 중수부의 현대·SK 비자금 및 대선자금 수사에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특검 출범 및 수사진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특검 반대 목소리나 노 대통령의 수사기간 연장 거부로 수사가 중도에 중단된 점 등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또 특검 수사 이후 정몽헌 회장 자살 사건이 발생해 특검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 미국의 경우
1973년의 워터 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1978년 입법화한 미국의 특별검사제의 정확한 명칭은 독립검사(Independent Councel)이다.
말 그대로 행정부에서 독립한 법률가에게 정부 고위직의 비리를 파헤치는 권한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이다.
이란·콘트라 게이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화이트 워터 사건 등에서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성과를 거뒀으나 이 제도의 운영은 사실상 '정치적'이었다.
5년 한시법인 '공직자 윤리법'에 규정된 이 제도는 그 생명의 연장 자체가 공화당과 민주당의 당략적 측면에서 결정되곤 했다. 1994년 당시 공화당이 이란·콘트라 사건 문제로 재연장을 반대했으나, 클린턴 정부와 민주당이 재연장에 찬성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때의 연장은 부메랑이 되어 클린턴 자신에 대한 조사로 이어졌다.
비대해지는 대통령제에 대한 필수적 견제장치라는 지지론만큼이나 비판론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 제도 시행 후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된 20여개 의혹 사건 중 관련자가 기소된 사건은 4건에 불과했다.
특히 7,000만 달러의 예산을 소요하고도 클린턴의 지퍼만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화이트 워터 사건으로 '고비용 저효율'을 지적하는 비판론이 확산하면서 민주·공화 양당 합의로 1999년 이 법은 기간 만료와 함께 효력이 정지됐다.당시 로이터 통신은 "사랑 받지도 못했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나 제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법무장관은 내규에 따라 외부인을 특별검사(Special Prosecutor)로 임명할 수 있다. 최근 백악관의 중앙정보국(CIA) 비밀 요원 신분 누설 의혹으로 미 국민 10명 중 7명 꼴로 특별검사 임명을 지지하는 등 다시 특검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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