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개발센터는 각국의 환경단체들과 협력사업을 하거나 국제적인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국제 연대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등 3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고엽제 관련 토론회가 기억에 남는다.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베트남의 한 발표자가 준비해 온 슬라이드의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슬라이드에는 머리부터 상반신까지는 독립돼 있으면서 몸통 아래부분은 하나로 붙은 샴쌍둥이가 등장했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한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태어난 기형아였다. 발표자는 자신이 기형아의 분리수술을 했다며 다리가 하나뿐인 아이의 모습도 슬라이드 마지막 부분에 담았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그는 호소하듯이 당부했다. "고엽제의 피해는 이처럼 대를 이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고엽제와 같은 성분으로 마찬가지로 위험한 제초제의 사용을 절대 금지해 주십시오."
환경개발센터 이사장을 지내면서도 나는 단체의 사업에는 크게 간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기농에 대해서만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슈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요즘의 새만금이나 동강만큼 매력적인 구석이 없는 사안이었는지 경실련 고문을 맡으면서 경험했던 대로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유기농에 대한 나의 집념이 꺾인 것은 아니었다. 환경개발센터 내에서 공식적인 이슈로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농약과 화학비료 없는 유기농의 간절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근 들어서는 갖가지 연구 결과들이 나의 신념에 확신까지 더하고 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덴마크의 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항공업계 종사원들의 정자수는 정상인의 절반인 5,000∼6,000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유기농산물을 먹는 사람은 정상인 수치와 같았다. 또 미국의 어떤 지역에서는 합성세제와 환경호르몬 등이 원인이 돼서 서식 독수리의 80%가량이 알을 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인 환경서적 '도둑맞은 미래(stolen future)에 담겨있다. 뒤를 이어 일본 데이쿄(帝京)대학에서 나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40대 남성에 비해 30대 남성의 정자수가 적고 20대 남성은 그보다 더 적었다. 인스턴트 식품에 노출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하고 나는 강연회에서 항상 되묻는다. 끔찍한 미래를 맞지 않으려면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이용한 죽은 농사를 버리고 유기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언제나 한결 같은 나의 결론이다.
유기농법 실천으로 생명환경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 받아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는 글로벌500상을 받은 게 1995년이었다. 글로벌500상은 순전히 경실련 사무총장이던 유재현 박사의 노력 덕분이다. 유 박사가 시상항목에도 없는 유기농부문의 관련자료를 수집해 설득력 있는 공적서를 만들지 않았다면 내가 글로벌500상을 타는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시상식장에서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인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을 만나 잠시나마 인사를 나눈 것은 개인적인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의 무관심은 아직도 섭섭하게 남아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남아공 정부에서 베풀어준 축하연에서 현지 대사를 만났는데 그는 내가 글로벌500상을 수상하러 왔다는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국내에서 글로벌500상을 수상한 이는 나를 포함해 대략 10여명으로 '글로벌500한국인회'라는 친목모임도 갖고있다. 노융희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이 모임에서는 현장에서 묵묵히 환경사업에 힘쓰는 일꾼에게 매년 '풀뿌리상'을 시상하는 등 글로벌500상 수상의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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