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지보고 웬간해서 서민가수라 하겄소. 고맨코로 서민의 맺힌 맴을 잘 알아븐게 그라지." 송대관의 '유행가'가 하반기 들어, 말 그대로 유행하고 있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유행가 유행가 서글픈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단순하지만 신나는 멜로디에 실려 요즘 이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 울려 퍼진다."고속도로 가보랑께. 휴게소마다 차마다 흘러나와 같고는 아따 허벌나게 인기란께." 막 지방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입을 열자 마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기분 좋은 심사를 드러낸다.
"고상 떨고 심오한 클라식만 음악이다요. 가진 건 쥐방울 만큼도 안 되고 일자무식이 철철 넘치지만 맺힌 거 많은 사람들 맴은 누가 배따시 땃땃하게 안아준다요." 트로트를 단풍놀이 나선 아줌마들이 고속버스에서 춤추며 부르는 노래쯤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이다. "고속버스에서 왜 춤추겠어요? 그만큼 서민들이 즐길 기회가 없어서 그래요.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데서 트로트를 알아 주기나 하나요." 하지만 요즘은 힘이 난다. 트로트로 위안 삼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노래할 맛이 팍팍 난단다.
그의 노래는 먹고 살기 힘들 때 더욱 빛을 발했다. 1973년 '세월이 약이겠지요', 76년 그에게 가수왕을 안긴 '해뜰날', IMF 외환위기 직후의 '네박자', 이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도 힘차게 살아보자는 노래였다.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한 그는 "그게 다 체험에서 나온 뼈 아픈 절규"라며 "어렵게 살아 봐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68년 고향 전주에서 무작정 상경, 서울에 유학하던 친구들 집을 떠돌다가 70년 첫 노래 '사랑한다고'를 발표했지만 별 반향이 없자 "세월이 약이려니"하며 참고 지냈다. 언젠가는 '쨍하고 해뜰날'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만든 노래가 '해뜰날'이다.
미국 이민 생활도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지만 배짱으로 버텼다. "영어 못하면 어때요. 차 사고가 났는데 '니차만 차냐 내 차도 차다'란 뜻으로 '유어카 카, 마이카 노 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해결되더라구요." 그렇게, 언젠간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이겨온 그이기에 노래로 서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힘들 때 내 노래가 위안이 된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신나고 즐거운 노래만 부를 생각입니다. 요즘처럼 힘든 세상, 노래라도 밝아야 서민들이 위로를 받고 살 것 아닌가요. "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사진=고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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