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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릴레이 인터뷰] <6·끝> 김 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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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릴레이 인터뷰] <6·끝> 김 영 하

입력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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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전국 각지를 옮겨 다녔다. 작은 나라인데도 가는 곳마다 쓰는 말이 조금씩 다르고 살아가는 모양이 달랐다.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도 달랐다. 이사 온 꼬마가 '왕따'당하지 않으려면 딱지치기 규칙부터 새로 익혀야 했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문화와 풍습이 다른 곳으로 떠나 부서지고 살아 남는 '이주 서사'에 관심이 많았다."김영하(35)씨의 장편 '검은 꽃'(문학동네 발행)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땅 멕시코로 이주, 힘겨운 생존의 싸움을 벌여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대한제국이 기울어 가던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호가 제물포항에서 출발했다. 조선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들을 실어 나른 배다. 이렇게 시작된 '검은 꽃'은 이 배 안에서의 생활에 많은 무게를 둔다. "기록에 따르면 신부와 무당, 양반과 내시, 농민과 황족, 걸인과 고아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고 한다. 1,033명 중 200여 명이 대한제국의 제대 군인이었다. 심지어 먼 훗날 북한의 주석이 되는 김일성의 사촌도 타고 있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데 뒤섞였을 때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멕시코라는 또 다른 용광로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도 작가의 관심사였다. 한인들이 팔려간 땅, 당시의 유카탄 반도는 메스티조와 백인, 흑인과 마야인이 뒤섞여 있었고 각자의 정치적 지향이 각각의 비등점을 향해 달려갔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4년이라는 의무기간 여러 군데 에네켄 농장에 분산수용돼 가혹한 착취를 당했다. 계약이 만료된 뒤엔 조국이 식민지가 돼버려 돌아갈 곳도 없게 됐다. 멕시코 전역을 떠돌면서 살아 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몇몇은 멕시코에 불어 닥친 혁명과 내전의 바람에 휩쓸렸다. 이웃 과테말라의 정변에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밀림에 새로운 나라 '신대한'을 세웠던 선조들은 정부군의 대대적 소탕작전으로 전사하고 만다.

"그들은 물론 운이 나쁜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조선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운이 좋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시 그들은 채무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런 일은 21세기인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들을 희생자로 여기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남아있는 자들의 자기 기만이 아닐까." 그러니까 작가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인간 존재 일반의 운명'이다.

의고체 말투를 싫어해, 인물의 대사를 자연스러우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고심했다. 자료의 감정적 부분, 과장된 부분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정확한 재현보다는 상징적 형상화가 잘 맞는다는 생각에, 또 몇 권 분량이 될 만한 길고 긴 인생을 한 권에 단단하게 응축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장편으로서의 중량감과 주제 의식의 무게를 갖춘 작가의 야심작"으로 평가했다. 김영하씨는 아이오와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하고 있으며 현재 뉴욕 여행 중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 력

1968년 경북 고령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95년 계간 "리뷰"로 등단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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