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초 야구인 한두사람만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프로야구가 출범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구단이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95년 500만관중시대를 열며 조만간 1,000만명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점쳤지만 환상에 불과했다. 1995년 이후 관중이 감소하기 시작, 지난해에는 230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193만명)이후 최저수준이다.올해에도 관심을 끌만한 이벤트가 없어 야구인들의 걱정이 태산같았다. 다행히 이승엽(삼성)의 아시아홈런신기록(56개) 달성으로 지난해보다 40여만명이 증가했다. 이승엽마저 없었다면 하향곡선을 그렸을 것이라는 게 야구인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승엽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경우 내년부터 인기가 더 시들해질 것으로 예상하는 야구계는 5∼7일 일본 삿포로에서 벌어진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겸 2004 아테네올림픽 예선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프로야구 올스타로 짜여진 일본과 대만을 꺾고 올림픽출전티켓을 확보한다면 다시 붐이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당연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대만에 역전패한데 이어 일본에도 완패해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장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다. 또 "야구종주국 미국도 멕시코에 져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데…"라며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상황을 과연 야구계가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경기 내용은 한국야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비할 때나 타석에 들어섰을 때 우리 선수들은 한결같이 코치의 사인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포수 진갑용은 수비할 때 서너번씩 고개를 돌려 덕아웃을 쳐다 보고 사인을 확인해 목디스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마저 들었다. 리틀야구, 중고야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에다 대만전에서 선두 타자가 5번이나 베이스에 나간 후 벌인 4차례의 번트작전은 정말 아마추어 수준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방식의 경기 운영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들고 흥미를 잃게 한다. 올림픽 출전 자격을 놓쳐 분통이 터지지만 우리 야구가 점점 '재미없는 야구' '지루한 야구' '짜증나는 야구' 등으로 인식되는 게 더욱 안타깝다.
더 한심한 것은 대만전 패인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댄 점이다. 구심의 불리한 판정, 감독의 용병술 및 작전 실패, 파행적인 선수 선발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야구연맹 심판위원장이 대만인으로 심판 로비를 잘해 결정적인 순간 덕을 보았다"는 뒷이야기도 나왔지만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4년전 서울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이 대만을 11회 연장전 끝에 5―4로 신승하고 시드니 올림픽 진출권을 따내자 당시 대만 감독은 "심판이 한국에 유리한 판정을 해 우리가 당했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었다. 4년전의 대만이나 올해의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올림픽은 다음 기회에 나갈 수 있지만 한번 외면한 팬들의 눈길과 발길을 돌리는데는 더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네탓, 내탓'을 논할때가 아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탈출구를 찾는게 급선무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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