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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이제 아버지가 좀 이해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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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이제 아버지가 좀 이해돼요"

입력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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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무심코 켠 라디오가 이 달 말 첫 눈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군요. 당신을 대전국립묘지에 안장하던 10여년 전 일이 떠오릅니다. 첫 눈이 펑펑 내리던 11월이었지요.당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그리움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멉니다. 당신을 용서하기에는 당신으로 인해 겪은 고통의 기억이 아직도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잘 생긴 외모에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당신은 지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나서 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당신은 날마다 술을 마셨고, 술 뒤의 잔인함은 그 끝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잔인함에 나, 아니 우리 가족은 얼마나 치를 떨어야 했는지요.

가장 큰 피해자는 어머니였습니다.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지 제주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순진한 아가씨였던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당신과 선을 보았습니다. 그다지 마음에 끌리지는 않았지만 친척들의 권유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결혼 얼마 후 당신은 지뢰 사고를 당했고 행복한 신혼은 그것으로 끝이었다지요.

당신은 어머니를 "아들을 낳지 못한다"며 학대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신은 "딸들에게는 밥 먹이는 것도 아깝다"면서 쌀통을 열쇠로 잠그고 외출했지요. 어머니는 우리 세 자매가 배고파 하는 것을 보다 못해 구걸하다시피 쌀을 얻어와 밥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날의 굶주림은 지금도 절망과 분노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당신의 학대는 딸만 셋을 둔 어머니가 막내 아들을 낳고서야 끝났지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보훈 자녀'라는 말은 멍에였습니다. 납부금을 감면받기 위해 학교 선생님에게 보훈자녀 증명서를 내는 것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공부가 싫었기에 상고를 졸업하고 대충 직장에 다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살림을 차렸습니다. 첫 딸을 낳고 나서야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당신처럼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학대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가끔씩 당신이 그립다고 합니다. 당신이 옆에 있을 때는 밤이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고 나니 당신이 겪었어야 할 절망과 분노가 얼마간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당신과 화해를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달 어머니와 함께 당신을 찾아갈까 합니다.

/hi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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