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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Bill/복수의 칼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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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Bill/복수의 칼을 잡다

입력
200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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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커서 그 때도 복수심이 남아 있다면 나를 찾아 오너라" "내 눈을 보라. 내 입을 보라. 그리고 내가 누굴 닮았는지 기억해보라." "목숨이 붙어있는 자는 챙겨서 달아나라. 그러나 잘린 사지는 두고 가라. 그건 내 소유다." 1970년대 지린내 나는 2본 동시 상영관에서 홍콩 무협 영화를 볼 때 들었을 법한 대사들이다. "우리 이제 갈가마귀 같은 삶을 청산하고 백조의 삶을 살자꾸나" 식의 이런 대사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Kill Bill)에 나온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동양 컬트 영화팬이자 할리우드 악동인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 '킬빌'을 통해 홍콩이나 일본 무협 영화에 장대한 오마주를 바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그 오마주는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의 그 엉성한 타이틀을 그대로 따온 듯한 낡은 화면, 뒤틀린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일그러진 타이틀 음악이 흐르면 70년대 '천하제일권' '죽음의 다섯 손가락' 같은 영화 도입부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킬빌'은 결혼식장에서 난도질과 총질을 당해 4년6개월 동안이나 식물인간으로 지낸 블랙 코브라(우마 서먼)가 살인 조직 '데들리 바이퍼'의 두목 '빌'에게 복수하려고 나선다는 얘기다. 영화는 첫 번째 복수, 병실에 누운 브라이드, 두 번째 복수 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흩뜨려 놓았으나 전작에 비하면 장난기는 많이 사라졌다. 87년 '내 친구의 생일'을 시작으로, '펄프픽션' '포룸' '재키 브라운' '저수지의 개들' 등 다섯 편의 영화만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타란티노는 이제 동양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의 영원한 페르소나 우마 서먼에 대한 애정을 통해 재기 발랄한 액션 그 자체에 심취한다. 홍콩 쿵후 영화와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합친 화면에 너무나 익숙한 경음악 '고독한 양치기'가 흐르면 이 키치적 미장센은 화려하게 완성된다.

노란색 추리닝복을 입은 여자가 흑인 여자와 대결을 벌인다. 칼을 쥐고 서로를 그어대던 여자들은 노란색 스쿨 버스에서 아이가 내려 집으로 돌아오자 칼을 숨기고 이야기를 한다. 노란색 트레이닝복의 여자는 5년 전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임신한 채 죽은(줄 알았던) 블랙 코브라. 블랙 코브라는 자신을 난도질한 4명 중의 하나인 살모사(비비카 폭스)를 간단히 처리한다. 물론 많은 홍콩 영화에서 그렇듯, 살모사는 얕은 꾀를 부리다가 브라이드의 칼끝에 처연히 죽어간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아이에게 브라이드는 말한다. "복수심이 남아있다면 나를 찾아 오너라."

압권은 일본 야쿠자계를 평정한 오렌 이시(루시 리우)와의 청엽정 대결이다. 살모사와의 대결이 홍콩 무협이었다면, 오렌 이시와의 대결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 공간은 홍콩식 '객잔'에서의 대결이다. 100여명은 족히 될 법한 오렌 이시의 졸개를 무찌르며 그야말로 피바다를 만들고, 오렌 이시와의 정적 속 대결에 들어간다. 눈 내리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고요한 일본식 정원. 기모노를 입은 오렌 이시와 이소룡의 노란색 추리닝을 입은 브라이드는 하얀 눈밭에 빨간 피를 떨구며 대결한다. 21일 개봉하는 1편은 여기까지. 2편에서는 유산된 줄 알았던 블랙 코브라의 아이와 빌의 존재가 뚜렷하게 부각될 전망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리로디드'가 중간에서 이야기가 뚝 끊긴 것 같은 섭섭함을 안겨 주었다면, '킬빌'은 그런 여운조차 남기지 않는다. 과장된 유혈극과 활극이 주는 잔상이 하도 진해서 그럴 것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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