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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와의 전쟁/ 자산관리公·금융기관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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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와의 전쟁/ 자산관리公·금융기관 르포

입력
2003.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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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나 방문 접촉은 아예 엄두도 못 냅니다. 은행도 카드사도 다 포기한 악성 채무자들 아닙니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채권추심 전담인력이 상주하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용지원본부 빌딩. 직원들의 말을 빌리면 이곳은 이른바'썩은 채권'만 다루는 하수종말처리장이다. 일선 금융기관들이 100% 손실처리(대손상각)한 채 헐값에 팔아 넘긴 악성 부실채권들과 씨름하느라 이곳 직원들은 매일 같이 '피 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체납 업무 수백배 증가

올 들어 개인신용부실 사태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업무량은 종전보다 많게는 수백 배나 늘어났다. 신용카드와 캐피탈사의 소액 부실채권을 전담하는 신용지원 4부와 5부의 경우 직원 1인 당 할당된 추심 건이 평균 5,000∼6,000건. 가뜩이나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며 캠코로 넘어오는 개인부실채권(현재 88만여건)은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성업공사(캠코 전신) 시절부터 추심업무를 해왔다는 직원 신모(49)씨는 "전화는커녕 일일이 (채무자들의) 실제 주소지를 찾아내 빚 독촉장을 보내는 일만 해도 버겁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작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숙제는 연체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일이다. 그나마 일반 금융기관과는 달리 정부 행정전산망 등을 조회할 수 있다는 게 공공기관인 캠코의 강점. 하지만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 법적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갚을 돈이 없다"고 끝끝내 버티는 이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캠코 신용지원 4부가 얼마 전 성공적으로 채권을 회수한 사례 하나. 캠코측은 현금서비스 250만원을 장기 연체한 박모(50)씨에 대한 재산추적 결과 강원 속초에 시가 4,000만∼5,000만원 대의 콘도를 소유한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콘도에 대한 압류절차에 들어가자 박씨로부터 곧바로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모두 갚겠다"는 연락이 왔다. 신용지원 4부 관계자는 "연체자 중엔 정말 갚을 능력이 없는 한계 생활자도 있지만 빚 갚기를 고의로 회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재산이 있더라도 남의 명의로 돌려놓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재산추적을 통한 빚 독촉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째라족 늘어나

일선 금융기관들의 고충은 더욱 심하다. 개인워크아웃제도 등의 영향으로 "버티면 탕감받는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채무자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상황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전국에 24개 지역 채권팀을 운영 중인 A카드사 소속 채권추심원 이모(35)씨는 최근 들어 전화를 통한 채권회수를 거의 포기한 상태. 6년째 추심업무를 하고 있는 이씨는 "연체자 중엔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무조건 시비부터 건 뒤 통화내용을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많다"며 "괜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요즘엔 다소 번거롭더라도 전화보다는 직접 방문을 통해 상담하는 쪽으로 업무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착실하게 빚을 갚아나가던 사람들도 갑자기'배째라'로 돌아서는 등 영업환경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B카드사에 따르면 대환대출자인 김모(42·생산기술직)씨는 1,500만원의 카드 빚을 장기분할 상환키로 하고 최근 3개월간 매달 40만원 가량을 성실히 갚아왔다. 그러나 원금 일부 감면 등을 골자로 한 캠코의 신용회복프로그램 내용이 공개된 직후 "내 채권을 자산관리공사로 넘겨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B카드사 관계자는 "사회기강과 금융시스템의 공멸을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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