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 연미에게. 벌써 만추(晩秋), 늦가을 단풍이 산과 들을 아름답게 물들였구나. 우리들이 어린 시절 뛰놀던 경북 청송의 주왕산도 지금쯤 단풍이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겠지.연미야! 우린 같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지. 여고 졸업을 앞두고 항상 붙어 다니던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도 참 많이 흘렸지. 마치 이산 가족처럼 너는 대구로, 나는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게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구나.
몇 년 전 결혼식장에서 너를 만났지.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냥 행복해 하던 네 모습을 보면서 난 정말 기뻤단다. 얼마 전 전화에서 넌 내년에 아기 엄마가 된다며 가슴이 설렌다고 하더구나. 나는 지난해 노처녀 딱지를 뗐다만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설레임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어.
우린 고향에서 초등학교도 같이 손잡고 다녔지. 너의 부모님은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넌 가끔씩 식당에서 바나나를 몰래 가져와 내게 먹어보라고 주었지. 그 시절 바나나는 정말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지. 나는 그때 평생 처음으로 바나나를 먹었단다. 바나나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난 지금도 바나나를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래서 바나나를 한 움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곤 하는데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때가 있어.
이젠 모두 아줌마가 되어 집안일에 바쁘다 보니 연락도 하기 어렵구나. 연미야! 이번 겨울은 예년 겨울보다 춥다고 하는구나. 가뜩이나 몸도 무겁고 힘들텐데 몸 건강히 잘 지내었으면 한다. 바로 옆집에 너와 내가 함께 살았다면 매일 차를 마시면서 남편 흉도 보고 사는 이야기를 나눌텐데. 난 친구란 오래된 신발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신어도 발에 들어 맞는 오래된 신발 말이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자꾸나. 좋은 계절에 좋은 하루 하루를 보내기 바라며. 친구 영미가.
/ss7394071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