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각종 세금과 보험료, 과태료 등의 체납액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가계 빚 증가, 실업 및 소득 감소 등으로 서민의 생활고가 극한 상태임을 반영하는 것으로 자칫 집단적 파산 사태로 인한 사회불안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A6면9일 서울시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전기요금 체납건수가 올들어 9월말까지 1,205만건(6,52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48만건(4,695억원)에 비해 60.9%나 늘었다. 3개월 이상 전기료를 내지 못해 전기가 아예 끊긴 경우도 9월말 현재 47만9,015건으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31.7% 늘었다. 한전 관계자는 "체납 건수가 체납액 증가율(38.9%)을 크게 웃도는 것은 저소득층 가구와 영세식당 등의 소액 체납이 많기 때문"이라며 "올들어 외환위기 직후와 비슷한 수준으로 체납이 크게 늘고 있어 전기사용량이 월 100㎾ 미만인 저소득층 가정에 대해 단전조치를 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동 전화요금을 연체해 통화 중지된 경우도 6월말 109만명에서 9월말 현재 159만명으로 불과 3개월 새 50만명이 늘었다. 유선전화가 끊긴 경우도 60만명을 넘는다.
세금이나 과태료 체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국세 체납액은 2001년 13조3,930억원에서 2002년 14조8,544억원, 2003년 7월말 현재 10조6,943억원으로 급증했다. 국세나 지방세, 관세 등 500만원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한 사람만 9월말 현재 32만명에 달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 체납액이 2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또 영세상인 위주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878만가구 중 152만가구(17.3%)가 3회 이상 보험료 연체자로 조사됐고, 이 중 월 1만∼2만원의 보험료를 내는 빈곤층 가구가 30%나 됐다. 서울시의 주차위반 과태료 징수율은 2001년 53.2%, 2002년 44.0% 수준을 유지했으나, 올들어 9월까지 27.1%로 뚝 떨어졌다. 특히 구로구(22.8%), 동작구(21.6%) 등 서민층 밀집지역이 낮았다.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서민들이 병에 걸려도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거나 입원실에서 몰래 도망가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 강북의 한 대학병원은 입원 도중 몰래 빠져나가는 환자가 속출하면서 체납액이 지난해보다 30%나 늘어 무려 1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카드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9월말 현재 대환대출을 포함한 실질 연체율은 29.6%로 전달(27.3%)보다 2.3%포인트 높아졌다. 더욱이 카드사의 실적 악화가 겹쳐 카드채 거래가 사실상 끊기는 등 '제2의 카드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임병철(林炳喆) 연구위원은 "경기 불황의 여파로 소득규모가 줄면서 특히 중산·서민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경기 회복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게 해 주는 것이 시급한데도 정치 싸움 탓에 경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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