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고, 고소득층은 그것을 위해 높은 세금을 낼 의사가 전혀 없고, 정치인들의 도덕성도 의심스럽다. 부의 세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나라가 아닌가." 이메일로 보내온 글에서 배수아(38)씨는 "이 나라에서 빈곤은 가장 극적인 테마"라고 밝혔다. 그는 문학에 관한 대화를 구어(口語)로 하는 걸 낯설어 하는 쪽이다. 인터뷰를 청하자 질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반나절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정리한 답변을 보냈다.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후보작인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문학과지성사 발행)은 빈곤에 관한 이야기다. 부암동 골목길의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궁핍하고 가난한 삶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전직 대학교수 출신 실직자, 두 아이를 데리고 직업도 없이 부자 동네에서 수준을 맞추느라 허덕거리는 여자, 배를 쫄쫄 곯으면서도 몸은 이상하게 불어나는 처녀 같은 인물이 등장해 저마다의 얘기를 풀어간다. 모두 부(富)의 과시가 당연한 세상이라는 아이콘을 갖고 있지만 빈곤이라는, 21세기에는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코드를 몸으로 겪는 사람들이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배수아씨가 1년 여 독일에서 체류하면서 쓴 소설이다. 먼 곳에서 그가 본 것은 '가난을 경멸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였다. 빈자와 부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모습에 드러난 가난이었다. 배씨가 보기에 요즘은 "빈곤이 분명히 거대하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10여 명의 인물, 17편의 에피소드에 담았다. 인물 간 이야기를 서로서로 연결시킨 데 대해 "소설처럼 읽히기 위한 상투적 트릭이다. 관심을 사려는 의도가 확연하다"며 "사실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배수아씨다운, 솔직한 자평이다.
심사위원들은 이에 대해 "배수아씨의 작품 세계는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축을 갖고 있고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현실의 극한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그 동안의 '모던'한 글쓰기와 달라진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1990년대에 내 소설을 그렇게 유형화한 것은 사회가 그런 것에 굶주려 있어 누군가에게 그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는 부족하지만 진지하려고 노력하는, 어수룩한 편에 가까운 사람이고 글쓰기도 아주 다르지는 않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 글이 어떤 의미로는 '모던 룩'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관찰하는 사람들이 조금 지나치게 '촌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내면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따라 스스로 진행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원칙적으로 글쓰기란 개인의 자유로운 스타일 그 자체가 돼야 할 것"이라며 자신만의 소설관을 피력했다. 실제로 기성 문단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작가로 잘 알려진 그다.
"나는 스승이나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남보다 더 먼 길을 돌아서 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 기분은 계속 유지된다. 나는 아직도 독학자의 길에 있고 지금 그것을 즐기고 있다." 올 3월 귀국한 그는 장편을 집필, 다음 주에 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 력
1965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1993년 '소설과 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중편 '철수' 장편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붉은손 클럽' '동물원 킨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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