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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교육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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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교육을 생각하자

입력
2003.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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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정치부패 문제로 시끄러운 가운데 교육과 관련된 비극적인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대입 수능시험 성적을 비관한 고3 학생들이 자살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을 외국에 보낸 채 혼자 살던 '기러기아빠'들이 외롭게 숨지는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이런 사건들은 이제 일상화하여 사회적인 충격조차 무뎌진 느낌이다. 대학입시를 전후한 입시생들의 자살은 연례행사가 됐고, 조기유학으로 인한 가족해체는 더 이상 화제거리도 아니다.

사건 자체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구도 진심으로 충격 받지 않는 사회분위기다. 그 비극적인 사건들은 우리 교육의 병폐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인문제로 내모는 무관심이 자리잡게 됐다.

수능고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왜 자살을 하나, 조기유학을 보내면 무슨 수가 난다고 가족해체를 무릅쓰나 라는 개탄 속에는 그들에게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숨어있다. 남들은 다 경쟁을 견디지 않느냐는 차가운 시선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교육이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는 너도나도 흥분하면서 수능시험날 자살한 고3 학생에게는 무관심한 사고의 불균형을 깨야 한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고3 학생들의 자살을 다루면서 수능 횟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전적으로 그 주장에 동의한다. 학생들을 '단판 승부'에 매달리게 하는 것은 비교육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또 대학의 자율을 확대하는 것과는 별도로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국가고시의 기능을 강화하여 중요한 대입 전형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동안 수능 복수화 주장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교육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번 시험을 치르면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난이도 조정 등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한번 치르기도 힘든데, 어떻게 여러 번 치르겠느냐는 소극적인 자세가 단판 승부의 비교육성을 외면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단판 승부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1994년 별세한 전 포항공대 총장 김호길 박사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90년대 초 줄기차게 대학 복수지원제를 주장했고 실천에 앞장섰다. 전국의 대학들이 같은 날 시험을 치름으로써 우수한 인재들이 단 한번 시험에서 실패하여 재수 삼수를 하는 국가적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그는 외쳤다.

교육당국은 머리를 흔들었다. 복수 합격한 학생들이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이동하면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대학의 서열화가 고착된다는 것이었다. 김 박사는 교육당국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94년도 입시에서 포항공대 시험 날자를 서울대와 다른 날로 잡음으로써 복수지원의 길을 열었다.

포항공대로서는 일대 모험이었다. 수석합격자까지 서울대로 가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김 총장은 "수석이 가면 2등이, 2등도 가면 3등이 수석합격자가 될 텐데 무슨 걱정이냐"고 교직원들을 설득했다. 합격자들이 일부 빠져나갔지만 전체적으로 신입생 수준이 올라갔으니 학교 위신 타령은 하지 말자는 소리였다.

교육당국은 학생입장이 아닌 대학의 입장에서 혼란과 서열화를 겁냈지만, 정작 대학총장인 그는 우수한 인재들이 잘못된 입시제도로 희생돼서는 안 되며, 제도를 바로잡으면 자기학교에도 도움이 된다는 큰 생각을 밀고 나갔다. 오늘 대입 수능시험 복수화에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석합격자는 얼마든지 줄 서 있어요"라고 말하며 껄껄 웃던 김 박사가 떠오른다.

교육개혁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은 내자식의 일이 아니라 국가백년대계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육 문제가 국민의 행복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더 이상 해결을 미룰 수는 없다.

오늘 벌어지는 온갖 사회현상의 근본에는 잘못된 교육제도가 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경쟁심리, 흑백논리, 도덕성 결핍, 빈약한 사고, 형평감각의 상실 등은 모두 빗나간 교육의 산물이다.

한 정권의 명운 뿐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걸고 교육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개혁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육개혁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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