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보드래 지음·현실문화연구 발행·1만 3,000원
사랑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것은 구닥다리처럼 보인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고 안되겠다 싶으면 산뜻하게 돌아서는, 이른바 '쿨'한 행태가 요즘의 인기 풍속이니까.
그런데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20년대 초반의 몇 년 간, 달뜬 연애 열기가 식민지 조선을 휩쓸었다. 우리말에 없던 '연애'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연애소설이 쏟아지고, 연애편지가 유행했다. 신문 사회면의 3분의 1을 연애사건이 차지하는 날도 많았다. 연애소설 주인공처럼 말하고 꾸미고 자살용 독약을 갖고 다니는가 하면, 연애사건 주인공이 스타가 되기도 했다. 숱한 사람들이 "나는 당신을 위하여 살았어요! 그리고 당신을 위하여 죽어요! 애인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노자영 '사랑의 불꽃', 1923) 라고 외쳤던 그 시절을 '연애의 시대'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국근대문학 연구자인 권보드래(34)씨가 쓴 '연애의 시대―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은 재미있는 책이다. 당시 소설과 신문기사, 잡지, 삽화, 광고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연애 열기를 살피고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식민지라는 엄혹한 현실이 버티고 있었는데, 그때를 '연애의 시대'로 규정하는 건 지나친 일반화가 아닐까. "책 제목은 '수사학적 과장'이지요. 그러나 그 시절 신문을 보면,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요. 비록 3, 4년 간의 짧은 시기였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연애를 믿었고 연애가 모든 담론의 중심이었으니까요. 사회주의운동이 본격화한 1920년대 중반 이후 연애열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그 독한 유행은 지나갔지만, 그 여파는 지금도 남아있어요. 지고지순한 사랑과 그 결실로서의 행복한 결혼에 대한 선망은 여전하니까요."
왜 그토록 연애에 열광했을까. 그는 "연애열은 당시 조선을 휩쓴 개조론의 대중적 변종"이라고 말한다. 개조론은 3·1운동이 끝나고 일제의 문화통치가 시작된 그 무렵 조선의 화두였다. 개인부터 가정, 사회, 국가까지 전 영역에 걸쳐 낡은 생각과 관습,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주장이다.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이 전통에 맞서는 새로운 가치로 부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극적 연애사건의 주인공을 열렬히 사랑하던 대중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유명가수 윤심덕의 자살에는 왜 '허영'이니 '일본 따라하기'니 하고 비난을 퍼부었을까. 신식 연애의 종착점으로 '스위트홈'을 꿈꾸는 한편으로 정사(情死)를 열망한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이 책에서는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없다. 서문에서 밝혔듯 '왜' 보다는 '어떻게' 연애가 세상을 지배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구석구석 살피는 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자신조차 당시 연애열이 잘 이해가 안 돼요. 3·1 운동으로 수천 명이 희생된 지 1, 2년 밖에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갑자기 연애에 몰두하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절망과 비탄이 주조를 이뤄야 하는데도 연애의 희망과 낙관이 넘치고 그런 한편으로는 비극적 사랑을 꿈꿨다는 건 그 시대의 분열상일까요? "
학문적 엄밀함이나 실증적 토대로 따진다면 이 책은 빈 구석이 많다. 지은이는 "더 공부할 게 많다"며 이 책을 '서론'으로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한국 근대의 여러 시기 중 1920년대 초반은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미답의 영토다. 이 책은 '연애'를 열쇠 삼아 그 문을 열었다.
/글·사진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