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 협의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설명대로 어떤 성격의 부대를 파견할지, 파병 규모를 얼마나 할지 등은 파견국의 주권에 속한다. 하지만 파병 논의 자체가 미국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우리 정부의 고민이 있다.5,6일 워싱턴에서 진행됐던 이번 2차 협의는 크게 봐서 양국의 입장이 접근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양국의 대표단이 얼굴을 맞대고 장시간 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대표단이 미측 관리들을 개별 면담하는 형식으로 일정이 짜인 것이 이번 협의가 결론을 내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서로가 입장의 큰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 교체 계획이 확정되는 상황 변화에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특정 지역'에서 독립 작전을 펼 수 있는 '사단급 규모'의 '안정화군'을 보낼 줄 것을 기대하는 미국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 측면 모두에서 양국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안정화군의 가장 큰 임무는 특정 지역의 치안 및 질서 유지이다. 인프라 구축도 안정화 작전의 일부분이지만 치안확보보다는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이 점에서 미국이 원하는 한국군의 편제는 전투력을 갖춘 보병사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의 파병 반대론, 이라크의 불안한 치안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 정부로서는 내심 안정화군의 2차적 임무 즉 인프라 구축 등 기능적 임무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협의도 공병 위주의 부대 구성에 대한 미국측의 의사를 타진하는 데 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런 방안은 정부 복안 중의 하나이고 향후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안이다. 하지만 미측의 생각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한국 정부의 '떠보기'에 미측 관리들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또 한국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부대의 규모도 다국적군 사단의 지휘를 맡을 정도의 병력 파견을 원하는 미국측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군 교체 계획도 변수다. 미 국방부는 6일 이라크 주둔 병력 13만 명 전원을 내년 4월까지 순차적으로 교대한다는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한국군의 파견 규모 성격 시기 등 문제는 미측 교대 계획과 연동돼 있어 향후 어려운 협의 과정을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한미간의 파병 협의는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미군 교대가 이뤄지면서 오히려 미국측은 한국 정부의 조속한 파병 결정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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