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1일은 미국, 그리고 영국 등에서 할로윈이라는 축제가 벌어진 날이다. 원래 할로윈은 유럽의 켈트족의 구원신앙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날 죽음의 신을 섬기는 행사를 벌인다. 또 당일은 유령이나 마귀 또는 요정들이 인간을 다스린다는 다분히 신화적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이날 밤엔 가장을 한 아이들이 불을 밝힌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trick-or-treat)"을 외치면 어른들은 사탕을 집어 주기도 하고, 사탕이 없으면 불을 끄고 사람이 없는 것처럼 꾸미며, 또는 노 캔디(No Candy)라고 써 붙여 놓기도 하며 일종의 놀이를 즐긴다.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나선 부모들은 나름대로 멋을 내기도 하고 아이들은 일년 동안 먹을 사탕을 그날 다 장만한다.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할로윈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할로윈은 아이들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대학생들이 모여서 할로윈 축제와 파티를 따로 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물론 파티가 벌어진 곳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일상화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젊은이들이 할로윈 파티를 호텔에서, 나이트클럽에서, 그리고 대학가 클럽에서 벌인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벌써 몇 년째 계속 되어온 모양인데, 물론 할로윈도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처럼 일종의 놀이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할로윈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서양 문화의 유입과 함께 급속히 번져가는, 그저 놀자는 의미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할로윈은 그 이면에 그 민족의 역사와 신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당연히 우리의 문화적 풍토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우리가 알아야 한다.
어느 문화에서나 놀이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상징한다. 즉, 그 놀이를 즐김으로써 일상적인 자아로부터 벗어나 다른 주체로 탄생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할로윈은 그날 놀이를 즐김으로써 죽은 자를 위로하고 죽음에 대해서 겸손해지는 그런 의미를 갖는 날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는 우리 젊은이들의 놀이 속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할로윈과 같이 뿌리도 없는 놀이문화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다른 한편으로는 장갑차를 점거하며 반미시위를 주도하는 우리 젊은이들, 수능시험을 실패해 자살한 여학생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들의 양극단성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감상에 젖어 든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의 지혜를 배워나가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의 신명이 깃들여 있지도 않고 통과의례적 의미도 없는 놀이문화가 젊은이들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킬까 우려된다. 또 한편으로 자신의 주의주장을 극단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절박함과 나약함은 비록 이해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박수를 받지는 못한다.
할로윈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상업주의도 문제지만 이를 아무런 의식 없이 수용하는 젊은이들의 무분별함과 절제되지 않은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행동 속에서는 진리와 정의를 위해 번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지금처럼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취업할 것인가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어릴 때부터 체득해야 할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인식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젊은 세대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것이라는 점에서, 진지한 대화와 고민,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가 젊은 날의 선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재 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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