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영화 ‘깝스’에 나오는 경찰은 팔자도 좋다. 그들이 사는 마을에선 도무지 변변한 사건 사고 하나 터지질 않는다. 실제로 이런 마을이 존재한다면 좋겠다. 아니, 이것은 여하튼 인간이 만든 세상 중에 가장 양질의 세상을 산다고 하는 북구 복지 국가에서나 가능한 설정일 것이다.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이런 세상을 배경으로 무슨 영화를 만든단 말인가. 살기는 좋겠지만 도무지 영화 속 등장 인물은 사는 게 심드렁하다. 이렇게 편안하지만 재미 없는 곳에서 영화를 찍는 젊은 감독 요제프 파레스는 기발한 이야기의 판을 짠다.
어느 날 상부에서 자신들의 직장인 경찰서를 폐쇄한다는 청천벽력에 가까운 통고를 받은 경찰들은 얕은 꾀를 낸다. 간이 음식점에 불을 지르고 길가의 의자를 부수는 따위의 소소한 범죄를 직접 저지르던 그들은 간이 점점 커져서 기어이 인질 납치 조작극까지 벌인다.
무료한 일상에서 소소한 해프닝을 안주 삼아 펼쳐지던 영화 ‘깝스’는 곧 느닷없이 할리우드 영화 풍으로 바뀐다. 주인공 경찰들 가운데 할리우드 영화광인 베니는 무료한 현실에서 툭하면 ‘다이 하드’ 류의 액션을 꿈꾼다.
그게 조금씩 현실이 되면서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던 베니의 꼬락서니가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긴 매부리코를 지닌 꺽다리 경찰 야곱은 경찰서 폐쇄를 통보하러 온 상부 요원 여자와 은근한 연애에 빠져든다.
‘깝스’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깜찍한 코미디 소품이지만 오늘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즐기기 위해 우리가 일용할 거리들이 궁극에는 할리우드적 구경거리의 경계에 갇혀 있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역설로 드러낸다. 현실이 할리우드 영화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궁리만 하지 말고 이 영화에서처럼 직접 실행에 옮겨 보면 피곤하기는 하겠지만 여하튼 재미 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비트’ ‘무사’ 등의 영화로 선 굵은 남성적 액션을 화려한 스타일로 담아온 김성수 감독에게 ‘영어완전정복’은 뜻밖의 카드다. 온 나라에 몰아치는 영어 공부 광풍을 소재로 세태 풍속극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이 영화는 온갖 웃음의 뇌관을 깔아놓고 콩글리시에 절망한 대한민국 청춘 남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에피소드를 전시한다.
세태 그 자체에 기초하고도 충분히 진한 웃음을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이 영화는 요즘 유행하는 감각 코드에 맞추느라 그야말로 열심히 젊은 관객의 취향에 봉사하려 용을 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호소력 있는 코미디 영화가 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 이 영화는 재능 있는 감독 김성수의 신작이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3_레볼루션’만큼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속담이 어울리는 영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할리우드 제작사가 잘 알고 있다. 이 영화는 딱 한차례의 월드 프리미어만을 치른 채 어떤 경우에도 개봉 전까지 비평이 나가지 않는 것을 마케팅 원칙으로 내세웠다.
비평이 없어도 이 영화는 개봉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수많은 관객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네오가 트리니티를 살리도록 함으로써 사랑의 기적을 거듭 강조한 2편의 결말이 3편에선 더 확장돼 사랑의 동심원이 엄청나게 커지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시리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지만 사실, 이 시리즈의 진짜 매력은 물리학의 법칙을 조롱하는 액션의 신기원에 있었다. 2편에서처럼 너무 허풍치지 말고 순수한 오락 영화로 멋지게 자리매김하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