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바람난 가족'은 뜨거운 영화다. '이 시대의 가족은 안녕한가'라고 묻는 질문은 자못 도발적이며 그 날카로움은 폐부까지 쑤신다. 아버지(김인문)가 병문안 온 가족에게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장면, 호정(문소리)이 이웃집 고교생(봉태규)과 섹스를 하다가 통곡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격정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위로는 시어머니부터 아래로는 며느리까지 바람을 피우는 영화 속 가족의 가치관은 임상수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또렷하다. 그것은 20대의 성윤리를 다룬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10대들의 일탈을 그린 '눈물'이 나아간 곳에서 한 발짝 더 나간다. 그러나 영화는 은밀하게 떠도는 성담론을 까발린 화장실 벽화가 아니다. 임 감독은 붕괴된 가족의 초상을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시대의 가족화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다.
그 밑그림이란 욕망에 대한 당당한 노출과 가부장적 가치에 대한 거부다. 권위적인 남편의 그늘 속에서 갇혀 지냈던 시어머니(윤여정)는 남편이 죽고난 뒤 "나 오르가즘이란 거 처음 느꼈다"고 뿌듯해 하며, 고교생(봉태규)의 아이를 밴 호정은 남편에게 '아웃'이라고 선언한다. 공사중인 빌딩에서 버려지는 아이 등 선정적인 터치는 이 미래의 가족화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18세가.
아이스 스톰
'아이스 스톰(The Ice Storm,1997)'은 '헐크' '와호장룡'을 만든 리안의 영화 중 가장 차가운 영화일 것이다. 차디 찬 비바람 '아이스 스톰'이 부는 가운데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광경은 '아이스 스톰'이 선사하는 장관이자 리안 감독이 가족을 바라보는 냉랭한 시선의 결정체다. 1973년 미국 뉴욕의 중산층 가족과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추수감사절에 모처럼 모인 식구들은 싸늘한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사랑 없음을 확인한다.
아버지(케빈 클라인)는 바람을 피우면서도 자애로운 가장인 척 굴고 버릇 없는 10대 웬디는 워커게이트를 들먹이며 아버지 세대를 비웃는다. 웬디는 남자친구의 동생을 데리고 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교환섹스 파티에 가는 추수감사절 저녁이라. 이보다 더 암담한 지옥도가 또 있을까.
'아이스 스톰'의 빼어남은 이 아수라장을 숨막힐 듯한 절제의 미학으로 그려냈다는 데 있다.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전쟁 등 미국사회를 떠도는 공기와 집 안의 공기를 한데 불러내는 거시적인 통찰력도 남다른 데가 있다.
그러나 리안은 마지막 장면에서 차가운 폭풍 속에 미약하게 뛰고 있는 따스한 맥박을 잡아낸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화룡점정이다. 18세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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