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겨울 경북 문경 봉암사. 한국 선불교의 중흥을 위해 이른바 '봉암사 결사'를 주도한 성철, 청담, 자운 스님 등이 동안거에 들어간 때였다. 초겨울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날 성철 스님이 한 스님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어떤 놈이냐?" 성철 스님의 물음에 그 스님은 주먹 쥔 오른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내려놓고 말로 얘기해보라." 다시 왼손을 내밀었다. "주먹을 내놓지 말고 말로 얘기하라." 스님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아이고!" "다시 한번 일러보라." 이 물음에 막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성철 스님이 갑자기 달려들어 멱살을 거머잡더니 밖으로 끌고 나와 세숫대야에 담겨 있던 물을 머리 위로 덮어씌웠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성철 스님과 현 조계종 종정 법전(法傳·78·사진) 스님 간에 벌어진 법거량(法擧揚·불가의 스승이 제자의 수행 정도를 문답으로 점검하는 것)이었다.
법전 스님이 14살의 어린 나이로 출가한 때부터 조계종 최고 어른인 종정이 되기까지의 수행 일대기를 담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조계종출판사 발행)가 출간됐다. 조계종 종정의 수행기가 재임시에 책으로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출가 동기로부터 스승 성철과의 만남,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수행 이력이 솔직하게 드러나있다. 192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스님의 출가는 "속가에 놔두면 단명할 팔자"라는 어느 역술가의 말을 듣고 부모님이 결정한 일이었다. 고된 행자 생활 중에 부모님이 그리워 울기도 했고 한때 속가로 돌아간 적도 있었을 만큼 평범한 출발이었다.
그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봉암사에서 이루어진 스승 성철과의 만남이었다. "수행자의 생명은 화두 참구에 있다"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은 그에게 천둥벽력으로 다가왔다. "성철 스님을 대하자 확실히 도를 깨친 분이라는 믿음이 갔어요. '이 분이 나를 지도해 줄 수 있는 스승이다'하는 생각이 들어 전적으로 의지했지요." 법전 스님은 봉암사를 떠나 문경 묘적암에서 밥 한 덩어리에 김치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정진하던 중에 홀연히 깨달음의 빛이 찾아왔다고 했다. 이어 파계사에 주석하고 있던 성철 스님 지도 하에 수행하면서 '내면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스님은 참선에 뜻을 두고 선객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후 집으로의 발길을 끊고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다. 아버지가 찾아와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찾는다는 말을 전해주었을 때도 "저는 집을 떠난 출가자"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 수행기는 법전 스님이 구술한 것을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다. 수행기와 함께 법전 스님의 법문도 수록돼 있다.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 편집장 원철 스님은 "법전 스님은 종정이 되기 전까지 초야에 묻혀 있던 인물"이라며 "이 수행기를 통해 스님의 면모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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