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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점-역술인이 본 요지경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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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점-역술인이 본 요지경 세태

입력
200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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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어차피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정치 혼란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일도 사랑도 엉켜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세상, 점집을 찾는 발길은 꾸준히 이어진다. 나도 모르게 절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할 시시콜콜한 얘기를 털어놓게 되는 2평짜리 공간. 그 안에는 그 어떤 현자도 파악하지 못한 인간냄새 나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 가득하다.Y원장, C선생, L선생, H원장 등 소문난 역술인들이 그들이 보고 들은 세상을 살짝 털어놓았다.

입시운? 이젠 유학운

“예전에는 입시철만 되면 손님이 서너 배로 늘었죠. 특히 학력고사 시대에는 지원을 하고 나서 시험을 쳤기 때문에 학교를 정해달라는 학부모들이 늦가을부터 밀려들었습니다. 요즘요? 수시모집에다 학교 지원도 비교적 많이 할 수 있으니 학교와 학과를 찍어달라는 의뢰는 거의 없어요. 대신 2~3년 전부터 유학 상담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 자녀의 사주를 들고 와서는 ‘뜰까요, 말까요’를 묻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이제 부모들 사이의 화두는 입시보다는 유학인 것 같아요.”

선거철, 어느 쪽에 붙어야 할까

“세상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선거철마다 횡행하는 ‘줄서기’지요. 내년 또다시 총선이 다가오니 누구 뒤에 서야 한 몫 챙길 수 있는지 묻는 손님들이 슬슬 늘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층은 대부분 부인들인데 어떻게 생년월일시를 알아오는지 수첩에 적힌 사주를 죽 펴놓고 질문을 시작합니다.‘어느 쪽에 붙어야 할까’ ‘누구의 운대가 좋은가’ ‘어떤 이와 경쟁해야 승산이 있냐’ 등 철이면 철마다 돌아오는 질문들이죠.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발표가 있은 후에는 대통령의 운명을 묻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전화나 인터넷으로, 그것도 말단 경찰 등을 시켜 묻는 걸 보니 고위 공직자들의 소행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그럼 이제 뭐하죠?"

“점이란 자고로 상담하고 싶은 문제가 명확할 때 용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저 답답하거나 심심해서, 또 재미로 찾아오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예전에는 ‘남편이 이번에 승진할까요’, ‘갈비집을 할까요, 분식집을 할까요’, ‘이과나 문과 중 맞는 곳은 어디죠’ 식으로 구체적 문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경제가 망가지면서 사람들은 이유 없이 마냥 답답한 모양입니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이제 뭐하죠’거든요. 사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약간 당황스럽죠. 한창 열심히 일해야할 젊은이들까지 터벅터벅 들어와 멍하게 ‘뭐하죠’라고 물으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너무 무력감에 빠져 있어요. 예전에는 뭔가 안 풀린다고 해도 ‘그런 게 어디 있냐. 두고 보라’면서 큰소리를 뻥뻥 치는 친구들이 많았죠. 근래에는 ‘몇 년 동안 힘들겠다’는 식으로 말하면 바로 ‘어쩐지 취업도 안되고 답답하더라. 죽어버릴까’라고 즉답해 말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여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남자가 소박맞는 시대가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유감이지만 급격히 늘고 있는 이혼 커플 중 상당수는 남편보다는 부인의 결정에 의해 헤어짐을 맞습니다. 결혼 후 애인 만드는 건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못된 짓’이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남자분들이 상담하는 내용 중 상당수는 예전에 여자들이 했던 고민 그대로입니다. ‘집사람에게 다른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 엄마가 돈 버는 데만 신경 쓰느라 집안을 돌보지 않습니다’ 등등. 어디서 많이 듣던 질문 같죠?”

이런 질문은 제발 그만

“아무리 급하다해도 제발 로또 번호 찍어달라는 질문은 하지 마십시오. 그걸 알면 진작 이걸 접었죠. 로또 같은 대박은 번호 잘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주에 횡재수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죠.

또 답답한 분들. 몸이 아프시다구요? 소화가 안 된다거나 얼굴에 자꾸 뭐가 난다구요? 병원으로 가셔야지 왜 점집으로 오십니까. 어느 부위가 약하다는 조언은 해드릴 수 있지만 약 먹고 주사 맞으시는 게 훨씬 빠를 거에요.

그렇지만 가장 싫은 손님은 노력도 않고 지푸라기 잡으러 오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돈을 수백만원씩 싸 들고 와서 무조건 부적 써달라, 굿 해달라 난리들입니다. 그리고는 ‘제발 괜찮을 거라고 말해달라’고 조릅니다. 물론 해드릴 수는 있지만 그런 나약한 인간에게 그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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